산업 기업

[CEO&Story] "고깃집 차리려고 만든 '자이글', 주부 입맛 잡아 대박났죠"

이진희 자이글 대표

대학 졸업후 물만두 제조사 입사

'회사 일이 나의 일' 모토로 최선

2년 만에 공장장으로 파격 승진

물만두 기계 개발하며 사업 눈떠

14년 직장생활 접고 외식업체 세워

친환경 고기구이기 4년만에 선봬

1,000억원대 매출 국민그릴 우뚝

주방기기에 새 카테고리 만들 것

15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자이글 그릴앤펍에서 만난 이진희 대표가 1990년대 초 식품회사에 다니던 시절부터 자이글을 창업하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송은석기자15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자이글 그릴앤펍에서 만난 이진희 대표가 1990년대 초 식품회사에 다니던 시절부터 자이글을 창업하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고 있다./송은석기자


사업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이직이 잦지 않던 시절이라 한 번 회사에 들어가면 계속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회사 일이 곧 나의 일’이었던 20대 청년 시절의 이진희(사진) 자이글(234920) 대표는 삽을 들고 공장 마당과 근처를 돌아다니며 쓰레기와 낙엽을 치웠다. 경기도 파주 외곽에 있던 공장에서 시내로 나가는 차가 하루에 단 2대뿐이라 부산 고향에 내려갈 때가 아니면 오롯이 공장에서 24시간을 보냈다. 수제 물만두를 만드는 식품 회사에 입사했으니 요리법을 배워보자는 생각에 어깨너머로 배운 제조법대로 기숙사에 돌아가 혼자 이리저리 재료를 배합하며 레시피도 짜봤다.


꾸준히 1년 정도 노력한 결과 한입 먹어보면 냉동만두 속에 어떤 재료가 어느 만큼의 비율로 들어갔는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수준이 됐다. 음식 레시피를 고민하다가 재료의 신선도가 중요하다고 느껴 공기 살균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렇게 회사 일에 온 열정을 쏟은 덕에 이 대표의 손길과 시선이 닿지 않은 공장 시설은 없었다. 공장을 살피러 온 사장에게 매주 보고한 리포트만 2년간 700건이 넘을 정도였다.

이 대표는 “대학교 졸업 후 수제 냉동물만두 제조회사에 입사해 기숙사에 살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보고서를 쓰며 하루를 보냈다”며 “회사 일이면 뭐든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공장 근처를 청소하는 분들이 따로 계셨다”고 말하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뭘 하든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를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회사의 세부적인 공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이 대표는 입사 2년 만에 제품개발과 환경관리를 총괄하는 공장장이 됐다. 회사원으로 승승장구하며 공장 뒷산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를 사업의 길로 이끈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수제 물만두는 맛이 좋았지만 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들다 보니 생산량 증가에 따른 회사의 인건비 부담이 컸다. 살균기 개발 경험이 있던 이 대표는 수제 물만두와 동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기계 개발에 착수했다.

“손으로 만두피랑 만두소를 잘 눌러 결착되도록 해야 삶을 때 터지지가 않아요. 그 부분이 기계화의 핵심이었죠.”

설계도를 완성해 기계 제조업체 사장에게 맡겼고 성공적으로 물만두 제조기가 탄생했다. 2년쯤 지났을까. 여전히 회사원이던 이 대표와 달리 해당 제조업체 사장은 그 기계를 중국에 판매하며 큰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그때 이 대표는 사업에 눈을 떴다. 그는 ‘아, 이런 삶도 있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미 가공식품 제조 공정에는 도가 튼 그였기에 14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곧바로 주방장이 필요없는 외식업체 ‘부민푸드’를 세웠다. 이 대표가 만든 소스와 면 등 재료를 기반으로 누구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국음식 브랜드였다.

대형마트 푸드코트에 입점하면서 장사는 곧잘 됐다. 하지만 점주 모집이 어려워 확장이 힘들었다. 예비 점주들과 상담을 해보면 열에 아홉은 고깃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사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깃집을 선호하시더라고요. 고깃집은 워낙 많아 차별화된 포인트가 필요했어요. 고기냄새를 없애면 괜찮겠다 싶었고 그때 자이글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적외선을 이용해 만든 기계로 고기를 구우면 냄새와 연기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개발과 테스트를 하는 데 걸린 시간만 꼬박 4년. 2008년 11월에 개발을 완료해 특허를 등록했다. 고깃집을 운영하기 위해 개발한 기계였지만 이왕이면 가정용으로 확장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적외선 출력과 무게를 줄이고 안전성을 높였다. 2009년 10월 가정용 자이글 그릴기가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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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력에 자신 있었기 때문에 잘될 거라고 확신했으나 오산이었다. 처음 방송한 홈쇼핑 채널을 통해 예상만큼 팔리지 않으면서 홈쇼핑 입점이 어려워졌다. 마땅히 제품을 알릴 마케팅 채널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재고를 팔기 위해서라면 이 대표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 어디든 달려갔다.

아파트 부녀회와 반상회 등에 직접 자이글 그릴기를 들고 가서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구워 먹여주며 사람들에게 홍보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머뭇머뭇거린 적도 많았다”며 “하지만 누구보다도 이 제품으로 맛있는 고기를 구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고 생존을 위해 꿋꿋이 버텼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겨우 제품 하나를 팔아도 제품 불량을 문제 삼는 고객들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이 대표는 “적외선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새 제품에 스크래치가 생겼다는 등 여러 항의가 들어와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교환해줬다”며 “여러 번 바꿔드려도 계속 문제 삼는 고객에게는 정말 죄송하다며 기계값과 함께 새 기계를 보내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힘들 때일수록 겸손한 자세로 고객을 대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제품에 반영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다행히 제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고객들도 많았다. 그들은 이 대표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하루는 어떤 고객으로부터 고맙다는 전화가 왔어요. 6학년짜리 딸이 만성빈혈에 시달리는데 약을 먹어도 안 낫더래요. 병원에서는 매일 삼겹살 두 줄을 구워서 먹이라는데 매일 프라이팬에 굽는 것도 일이고 집에 냄새가 가득해지니까 엄두가 안 나셨대요. 그러다가 저희 제품을 알게 돼 집에서 편하게 딸에게 고기를 먹였고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딸이 만성빈혈에서 벗어났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고객들 덕분에 계속해서 자이글 그릴기에 확신을 갖고 팔 수 있었어요.”

이진희 대표가 올해 새롭게 출시한 3~4인용 적외선 그릴기 ‘자이글 프로’를 들어보이고 있다./송은석기자이진희 대표가 올해 새롭게 출시한 3~4인용 적외선 그릴기 ‘자이글 프로’를 들어보이고 있다./송은석기자


발품을 팔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사업을 이어가던 이 대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자이글 제품을 눈여겨본 홈쇼핑 관계자가 찾아와 방송을 하자고 한 것.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방송을 찍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객 항의가 많아 방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이 전해졌다. 고기가 잘 익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던 이 대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 자이글 세 기기에서 동시에 냉동육을 아래위 2분씩 딱 4분만 직접 구워서 먹어보자는 것이다. 만약 자이글 기기에서 고기가 안 익는다면 방송을 철수하고 모두 반품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홈쇼핑 회사 내 사무실에서 벌어진 이 경쟁의 결과는 자이글의 압승이었다.

“홈쇼핑 관계자들의 젓가락이 자이글로 구운 고기에만 갔어요. 가스레인지로 구운 고기는 겉은 타고 속은 안 익었고 전기레인지로 구운 것은 녹지도 않았죠. 자이글로 구운 고기만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익었던 겁니다.”

그 이후 홈쇼핑 채널에서 자이글은 조금씩 인지도를 높이며 국민 그릴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지난 2015년 1,000억원대 매출을 돌파한 자이글은 2016년에도 1,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대표에게는 자이글 브랜드를 더 키워 주방 쪽에 ‘적외선 그릴기’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는 “주변에서는 그 정도 매출 나는 회사를 키웠으면 부동산을 사며 모은 자산을 굴리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며 “하지만 저에게는 자이글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점점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시대에 자이글 한 대로 고기를 구워먹으며 둘러앉아 가족 간에 대화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기쁘고 보람된다”고 덧붙였다.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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