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직감 수사를 하는 형사 박두만(송강호)에 맞서 과학수사를 주장하는 도시 형사 서태윤 역을 맡아 우직함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김상경(사진)이 24일 개봉하는 영화 ‘1급기밀’에서는 방산비리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 군인 역할로 돌아왔다. MBC ‘피디수첩’에 보도되기도 했던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등 방산비리 폭로를 담은 이 영화에서 국방부 항공부품구매과장 박대익 중령 역을 맡은 그를 최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블랙리스트 파문을 겪은 문화계는 언제부터인가 별생각 없이 웃기는 영화가 아닌 비리를 폭로하거나 과거사를 들춰내는 작품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넨다. 김상경 역시 이 작품을 선택하면서 그러한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시나리오를 읽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출연을 결정한 것이지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 영화에서처럼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산비리는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 때부터 있었던 것이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 작품을 보는 시선 또한 달라져선 안된다. 비리를 척결하는 데 있어서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겠냐”고 덧붙였다.
영화 주인공 박대익 중령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했다. 그는 “영화에도 나왔지만 천원 짜리 부품이 이십 만원으로 둔갑이 돼 있는 등 말도 안되는 비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며 “이러한 비리는 군인들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다. 공익제보를 한 실제 인물 김영수 소령 등은 정말 군을 사랑하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군 비리로 인해 군인들이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폭로를 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영화에서는 단종된 항공기 부품이 버젓이 구매 리스트에 오르는 등 기상천외한 비리들이 등장해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탄압 또한 충격적이다. 이 역시 모두 김영수 소령 등 공익제보자들이 겪은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박대익 중령의 부인이 위협적인 전화를 받고, 아빠가 군 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이뿐 아니죠. 군의 인사 보복으로 인해 박대익 중령이 일반 사병과 같은 책상을 쓰게 되요. 이 모든 것들이 실제 인물 김영수 소령이 당한 일들이라고 합니다.”
‘1급기밀’은 한국 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고(故) 홍기선 감독의 작품답게 진지한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조직생활,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상사에 대한 소소한 아부 등이 코믹하게 그려져 웃음을 자아낸다. 실제 촬영본에서는 코믹한 내용이 훨씬 많다고. “박 중령이 야전에 있다가 국방부로 와서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뱀술을 선물하는 장면이 있었다. 지휘관이 뱀술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고, 고지식한 박 중령이 그래도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뱀술을 선물하면서 잘 보이려고 웃는 장면 등 웃긴 장면이 많았다. 그런데 다 편집됐다. 아무래도 감독님께서 촬영을 마친 후 돌아가셨기 때문에 편집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편집을 한 것 같다.”
김상경은 특유의 친화력과 솔직한 입담으로 그가 있는 어느 곳에서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기로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촬영 현장에서 만난 스태프들의 이름을 다 외우려고 노력한다. 촬영 시작하면 딱 차에 명단을 붙여 놓고 무조건 촬영 5~10회 차에는 이름을 다 외워서 부르려고 노력한다. 이름을 불러야 가족 같고 친해진다. 한 번을 만나도 즐겁게 만나고 친근한 게 좋지 않나. 오늘은 기운이 좀 없는 편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막 신나게 인터뷰할지도 모른다.(웃음)”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