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귀화 국가대표



2008년 8월17일 베이징올림픽 탁구 여자단체 3·4위전. 숙적 일본을 꺾고 동메달이 결정된 순간 한국 국가대표 당예서 선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8년 전 한국에 들어온 후 보낸 인고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동메달 획득으로 당 선수는 한국에 귀화한 국가대표 선수로는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영예를 안았다. 부모가 모두 중국인인 그는 지린성 창춘 출신. 일찍이 국가대표가 됐으나 중국의 선수층이 워낙 두터워 국제대회에는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좌절의 시기를 보내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과 인연을 맺어 2007년 귀화했다. 탕나였던 이름도 바꿨다. 이듬해 각종 대회를 석권하고 국가대표에 선발돼 베이징올림픽에서 감격의 동메달을 따낸 것. 당 선수가 활동하던 즈음 귀화 국가대표는 배구의 후인정 선수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귀화선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데다 ‘단일 민족’이라는 인식도 작용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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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달리 일본은 1980년대부터 귀화선수를 잘 활용했다. 1989년 1호 귀화 축구선수 라모스 루이를 시작으로 브라질 출신을 대거 발탁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맞춰 취약 종목인 농구 등에서 전력 보강차 귀화선수를 물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귀화선수라면 중동의 부국 카타르를 빼놓을 수 없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유치를 계기로 하마드 알타니 당시 국왕이 앞장서 귀화선수를 적극 유치했다.

고연봉에다 고급 아파트로 유혹하니 실력 있는 외국 선수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2016년 리우올림픽 핸드볼 대표팀 16명 중 15명이 귀화선수였을 정도다.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막강한 전략을 짠다니 얼마나 많은 나라 출신이 모인 다국적 축구팀이 될지 궁금하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국가대표팀에서도 귀화선수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최근 엔트리 25명을 확정했는데 7명이 귀화선수라고 한다. 바이애슬론과 루지 등에도 순수 외국인 출신이 포진해 있다. 캐나다·미국·러시아·독일 등 국적도 다양하다. 올림픽선수단 130여명의 10%를 넘는다니 적지 않은 숫자다. 파란 눈의 태극전사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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