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토론자로 참가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어여쁜 숙녀분이 재킷에 네임택을 꽂아주려 다가왔다.
“어떡하죠? 구멍이 날 텐데. 죄송하지만 살짝 꽂아도 될까요?”
사회 활동하는 여성들이라면 흔히 겪는다. 네임택은 집게와 옷핀으로 돼 있는데 남성들은 옷이 상하지 않게 집게를 양복 주머니에 꽂으면 된다. 그렇지만 여성들의 옷에는 그런 주머니가 없다. 그 결과 재킷에는 온통 구멍투성이다. 이렇듯 사회 활동을 오래 한 여성들일수록 그녀들의 멋진 재킷들은 온통 구멍 난 전투복이 돼 간다.
정부가 오는 2020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을 현재 6.1%에서 10%로,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은 10.5%에서 20%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고무적인 발표인 반면 현재 상황에 대해 냉정한 인식을 하게 해준다.
산업계에서는 2018년 주요 기업 인사를 두고 유리천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창사 이래 포스코의 여성 임원 수가 두자릿수를 기록했으며 유통업계에는 최초로 홈플러스가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했고 보수적인 롯데그룹에서도 창사 이래 첫 여성 CEO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30대 그룹에 속한 주요 11개 기업의 임원인사 1,139명 중에 여성 임원은 34명이었다. 3%가 안 되는 비율이다. 이들 기업의 역사가 평균 50년 정도 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남녀 대학생 비율에서 여학생이 50%를 넘어선 교육 평등의 시대가 열린 현시점에서도 우리나라의 사회 참여 양성평등지수는 동등하지 않다. 실제 각 분야의 성평등지수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관련 지수들과 비교했을 때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5년 세계 성격차지수 조사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국 145개 나라 중 115위였다.
이런 결과의 상당 부분은 여성 개인의 사회 진출에 대한 선택이자 상대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생태계 내에서 경쟁에 뒤처진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혹 우리나라 사회·경제시스템이 일하는 여성에게 남성용 네임택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아베 신조 총리가 기업에 여성 인력 확대를 주문하자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2%에서 6.9%로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내각의 여성 비율도 30%로 끌어 올려졌다. 사회변화를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때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든다. 그 결과 이 나라의 딸들이 덜 어렵게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꿈을 실현해갈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불균형·불평등은 해결돼나갈 것이다. 그런데 네임택의 경우처럼 불균형·불평등 된 사회 시스템을 개선할 투자와 수고스러움을 기피하는 동안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수많은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함께 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노력은 분명 일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