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언더독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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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쪽 도버해협에 면한 칼레는 인구 8만명의 소도시다. 2000년 5월 이 도시 연고의 축구팀 ‘라싱 위니옹 FC칼레’가 프랑스를 발칵 뒤집었다. 슈퍼마켓 주인과 정원사·항만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4부리그의 아마추어팀이 프랑스 FA컵 대회에서 내로라하는 1부리그 팀들을 꺾고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비록 명문 FC낭트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기는 했지만 이 팀의 반란은 프랑스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다. 축구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칼레의 기적’이다.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결승전 직후 “FC칼레는 인간 정신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며 극찬했다.


스포츠에서 언더독의 반란만큼 유쾌한 감동은 없다. 약자(언더독·Under dog)가 강자(톱독·Top dog)를 꺾었을 때 대중이 느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반란에는 으레 열악한 환경에서 쏟아부은 남다른 열정이라는 뒷이야기가 있어 더 큰 감동을 준다. 그래서 언더독의 반란은 심심치 않게 영화의 소재가 된다. 2011년 개봉한 ‘머니볼’은 2002년 당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기적적인 20연승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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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에서도 언더독의 반란은 늘 주목받는다. 지난 2004년에는 특기생 한 명 없이 순수 아마추어로 구성된 서울대 야구부의 첫 승이 화제가 됐다. 1977년 창단 후 대학리그에서 단 1승도 없이 200전 1무199패를 기록하고 있던 서울대는 그해 가을 송원대를 2대0으로 이기면서 28년 만에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이제 갓 스물한 살로 아직 여드름투성이인 젊은 테니스 스타 정현이 유쾌한 반란으로 국민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고 있는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 노바크 조코비치 같은 세계 톱 랭커들을 잇따라 꺾고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8강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때마침 24일 치르는 8강전 상대 역시 정 선수와 함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언더독이어서 두 선수의 대결이 흥미롭다. 정 선수의 유쾌한 반란이 8강전을 넘어 4강·결승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정두환 논설위원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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