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염력’은 러닝 타임 101분 중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은 몰입감 높은 블랙코미디 판타지다. 염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벌이는 코믹한 상황은 쉴새 없이 웃음을 연발하고 자본의 무자비한 힘과 공권력에 소시민들이 대응할 수 있는 건 오직 상상 속에나 가능한 초능력밖에 없는가라는 생각이 수 많은 웃음들 사이를 관통해 쓰디쓴 뒷맛을 만들어낸다. ‘염력’에서도 천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을 통해 보여준 연상호 감독의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상상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아내와 딸 루미(심은경)를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 석헌(류승룡)이 어느 날 약수를 먹고 염력이 생기면서부터 시작한다. 그에게 초능력이 생긴 어느 ‘운수 좋은 날’, 딸에게서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례식장을 찾은 석헌은 그곳에서 아내가 왜 죽었는지 딸이 아빠가 없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고 비통해 한다. 통닭 장사를 하던 아내와 딸이 하루아침에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이에 맞서다 아내는 석연찮은 죽음을 맞게 되었고, 루미는 재개발 건설사 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 건설사가 고용한 용역 회사 직원들이 루미네 상가에 들이닥치고 폭력적으로 상인들에게 퇴거를 종용하려 무력을 행사하자 석헌은 염력을 이용해 이들을 해치우면서 그의 능력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아빠의 능력을 보고도 믿지 못해 ‘10년 동안 집 나가서 마술 배웠어?’라는 퉁명스러운 딸 루미의 반응을 비롯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염력을 만들어내는 석헌, 그리고 이에 놀라운 반응을 보이는 상가 상인들과 용역회사 직원들은 쉴새 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전반부가 석헌이 선사하는 코믹한 ‘염력쇼’였다면 중반으로 흐르면서 영화는 2009년 ‘용산 참사‘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을 만들어 내며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개발논리에 충실한 자본의 힘과 공권력의 폭력과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딸과 상가 철거민들을 구해내는 소시민이자 아빠 ‘슈퍼 히어로’의 활약은 통쾌하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만들어 내 눈물을 쏟게 한다. ‘염력’은 연 감독의 전작이자 댐 건설을 위해 수몰 지역이 되는 마을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파괴되는 인간성과 강화되는 자본논리를 냉철하게 바라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이다. 연 감독은 23일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부산행’ 때도 그랬던 것처럼, 초현실적인 소재를 다룰 때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뤄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도시개발이라는 보편적인 시스템 문제를 다뤘다”고 전했다.
제작 단계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염력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합격점이다. 염력으로 라이터를 낚아채고, 넥타이를 뱀처럼 움직이게 하는 장면을 비롯해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딸을 구하는 장면 등이 연 감독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으로 실감나게 재현됐다. 이 작업에는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감각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던 변봉선 촬영 감독, 실제 열차 세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세트로 ‘부산행’의 볼거리를 완성한 이목원 미술감독, ‘파수꾼’의 송현석 조명 감독이 함께 해 초능력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차별화된 시각효과를 완성해 냈다.
화려한 슈트를 입은 히어로가 아닌 허름하고 빛바랜 면바지에 면 점퍼를 입은 소시민 ‘히어로 역’의 류승룡은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코믹 연기부터 짠한 감동을 만들어내는 장면까지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딸 루미 역의 심은경 역시 충무로를 대표하는 ‘대체불가’ 여배우라는 수식어에 부합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아빠를 대하는 퉁명스러운 태도 안에 숨겨진 그리움과 쑥스러움 그리고 억척스러운 청년 창업자 등의 모습은 ‘수상한 그녀’ ‘써니’ 등을 통해 보여준 그의 맛깔나는 연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외에도 루미를 돕는 신참 변호사 정현 역의 ‘충무로의 새로운 피’ 박정민, 건설사 용역업체 민 사장 역의 김민재, 건설사 홍 상무 역의 정유미 역시 전형적인고 평면적인 역할임에도 극에 재미를 위한 개성있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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