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환율 칼자루' 흔들어대는 미국의 내로남불

미국의 환율 ‘오럴 해저드(oral hazard·언어의 해이)’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달러 약세를 환영한다”며 노골적으로 약달러를 부추겼다. 하지만 하루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아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달러는 점점 강해지고 궁극적으로 강한 달러를 보기 원한다”며 므누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달러 패권국 최고위층의 엇갈린 신호에 시장은 이틀 연속 쑥대밭이 됐다. 트럼프의 발언이 전해진 26일 원·달러 환율이 전날 급락(11원60전)의 충격에서 거의 벗어났지만 이틀 동안 시장은 미국발 ‘오럴 리스크’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트럼프의 강달러 언급은 대통령 취임 전후 줄곧 약달러를 강조했던 것에 비춰보면 다소 의외다. 시장에서는 므누신 장관이 미국의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 부담스러워 트럼프가 직접 수습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간의 사정이 뭐든 분명한 것은 미국이 약달러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강달러는 미 무역역조를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과거에도 그랬다. 미 재무부는 엔저를 유도한 1995년 ‘역플라자합의’ 이후 전통적으로 “강달러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약달러를 방관해왔다. 달러를 무제한 살포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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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미국이 환율 정책에 관한 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시장개입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걸핏하면 환율조작 운운하며 교역상대국을 압박하는 것은 모순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자 기축통화국의 횡포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미국의 다보스 발언에 대해 “환율 목표를 잡지 않기로 한 당국자의 합의를 어긴 것”이라고 비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의 약달러 정책에 1년 동안 원화 가치는 13% 상승했다. 원화 강세는 최근 더 가팔라지는 추세여서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환율전쟁이 싫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오럴 해저드에 우리 환율 정책이 흔들릴 이유가 없다. 시장안정의 막중한 책무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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