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라나 포루하 지음, 부키 펴냄

美기업 기술투자 줄여 혁신 외면

투기 통해 주주 배불리기만 급급

미국 시장경제 '금융화'로 병들어

자사주 매입금지·이득 세율 높여

금융, 실물경제 조력자 역할해야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지난 2001년 15.0%에서 2007년 13.3%로 하락하자 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대출해 준 월가(Wall Street)의 금융기관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대출금 회수’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판단한 그들은 GM에 당장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청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숫자를 잘 만들라’는 월가의 명령에 GM은 자동차의 안전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품 공급업체를 선정할 때조차 품질이 아닌 가격을 1순위로 고려했다. 이렇게 생산된 차들은 결국 치명적인 결함을 노출해 12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가면서 대규모 리콜 사태를 불렀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는 이처럼 금융이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미국 경제의 실태를 추적한 보고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부주필인 라나 포루하는 미국의 시장 자본주의를 병들게 한 주범으로 ‘금융화(financialization)’를 지목한다. 월가의 사고방식이 금융계를 넘어 산업계 전반으로 퍼지면서 혁신을 제1명제로 삼는 기업들은 줄어드는 반면 빈부 격차는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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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처럼 금융화에 물든 기업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정유 회사들은 정기적으로 투기성 원유 선물 거래를 통해 수익 증대를 꾀하고 있으며 항공사들은 비행기 티켓 판매보다 유가 헤지로 더 큰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저자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애플 역시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금융적 투기 행각에 사로잡힌 기업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팀 쿡은 지난 2013년 봄 돌연 170억 달러를 은행으로부터 차입하기로 결정했다. 애플은 이렇게 빌린 돈을 시설 투자나 제품 개발에 투입하지 않았다. 대신 이 돈으로 자사주를 대거 매입한 뒤 거액의 배당금 잔치를 벌였다. 덕분에 애플의 주가는 치솟았고 주주들은 수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챙겼다. 이처럼 설비 투자를 통한 혁신이 아닌 투기 바람이 기승을 부리면서 저자는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만드는 자(maker)’들이 ‘거저먹는 자(taker)’들에게 종속돼 버렸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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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업들이 금융화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사업이 수익을 거두기 쉬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꾸리는 과정에서 투자를 많이 할 필요도 없고 뇌 회전이 빠른 영민한 소수의 인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금융권의 끊임없는 정치권 로비로 ‘느슨한 규제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본연의 사업보다 금융 자산과 매출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난 2014년 미국 연방 하원이 개최한 청문회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가운데) 최고경영자(CEO)가 리콜 사태와 관련한 의원들의 추궁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014년 미국 연방 하원이 개최한 청문회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가운데) 최고경영자(CEO)가 리콜 사태와 관련한 의원들의 추궁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는 금융화의 병폐가 곪아 터진 2008년 이후 약 10년 만에 경제지표가 호조로 전환된 것 역시 착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10년간 미국 자본시장 규모는 3배가량 커졌고 기업들의 전체 수익 역시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경기 호전으로 인한 판매량 확대 덕분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회피해 왔기 때문이라고 책은 꼬집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금융을 ‘실물 경제의 조력자’라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한 방안들을 제안한다. 먼저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를 제한하거나 자본이득 세율을 인상하는 규제 정책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기업들은 ‘금융의 생명줄’인 부채를 줄이고 자기자본을 늘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이 오로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관점을 폐기해야 금융화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금융을 실물경제에, 즉 경제 체제를 만드는 이들 모두에게 이바지하는 본래의 자리에 되돌려 놓는다면 거저먹는 자들보다 만드는 자들이 대우받는 밝은 미래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1만8,000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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