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文, 관료에 왜 실망했나] 통상 등 국익 걸려도 뒷짐...기업 이익집단으로 보고 전문성 부족

[기업이 보는 관료]

美 철강 무역보복 거세지는데

해결책 대신 "수출 목표 낮춰라"

방패는커녕 소극대응·책임회피

여론 눈치보고 사시뜨고 기업 봐

2915A05 그래픽




지난해 12월21일 정부가 갈수록 강도가 세지는 미국의 철강 무역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철강 수입규제 민관 합동 네트워크숍’이 끝난 후 업계가 술렁였다. 이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가 “우리 철강재가 미국의 안보를 침해한다는 이유(무역확장법 232조)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더 강한 규제를 준비하고 있으니 미국 수출 목표를 낮춰 잡아달라”고 요청하면서다. 참석한 철강업체 고위 임원은 “수입 규제로 수출 물량이 줄고 있는데 당국자로부터 직접 해결책 대신 장사를 덜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으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관료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눈이 문재인 정부 들어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중국의 추격과 앞서 가는 선진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기업 현장은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데 정부 관료들에게서 치열함과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특히 한 달이 멀다 하고 수입 규제를 받고 있는 철강업계는 지난 2016년 하반기 기억에 몸서리를 친다. 지금의 무차별 철강규제는 미국이 포스코의 열연제품을 문제 삼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 뿌리다. 포스코 철강이 유통되는 한국을 비정상(PMS·특정시장상황)으로 분류해 관련 제품을 사용한 기업들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행태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정부는 업계와 함께 포스코 사태의 파장이 커질 줄 알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준비를 다 마쳤지만 결국 실행하지 않았다”며 “국정농단 사태로 청와대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장관이 책임지고 제소할 의지를 보이지 않자 고위공직자들이 모두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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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지난해 3년 만에 3%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 기업들은 최근 중국과 미국에서 난타당하는 무역 환경과 이를 막지 못하는 관료 사회를 믿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불합리한 수입 규제를 할 수 없게 ‘무역구제’ 챕터를 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와 함께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자 기업들은 “방패가 없다”고 답답해한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관료들은 업계를 만났을 때 미국으로 수출되는 세탁기 물량(20%)은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고 하더니 결국 아무 것도 안 됐다”며 “공무원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 한마디 하면 끝이지만 기업은 생사가 갈린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관료 사회에 보내는 냉소의 근본은 보신주의로 무장된 소극적·책임회피적 업무 태도다. 이는 감사원이 2016년 내놓은 특별감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공무원들의 소극적·책임회피성 업무 관련 민원은 2010년 4,803건이었지만 2014년에는 7,143건까지 폭증했다. 박근혜 정부가 규제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자 규제 완화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영역에서 공무원들이 ‘부처 간 업무 떠넘기기’나 ‘업무처리 지연’ 등 소극적 행정으로 일관한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 정권과 국정운영 철학이 크게 바뀐 최근에는 관료들이 ‘이 시기만 넘기자’며 더 보신주의에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일자리와 관련해 정부부처를 강하게 질타한 것도 이 같은 인식의 연장선이다.

보신주의에 빠져 ‘영혼 없는 정책’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다. 정책 신뢰가 추락해 기업들까지 복지부동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6년 6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워크숍’을 열고 한국전력이 독점하던 전력판매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기능 조정안을 내놨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산업용과 저소득층 전기요금 인상을 부를 수 있는 개혁안이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 폭염으로 국민들의 전기요금 불만이 폭증하자 한전이 1조원의 부담을 떠안는 조건으로 누진제를 개편했다. 몇 달 새 전기료 정책이 바뀐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을 내놓은 관료들은 어차피 1년이면 다른 자리로 가지 않느냐”며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에 어느 기업이 장기 계획을 세우고 따르겠느냐”고 일갈했다.

최근에 벌어진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두고 부처 간 이견이 커지며 정책이 춤을 춘 것도 기업들의 냉소를 자아낸다. 전문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손 쓸 수 없으니 민간을 더 강하게 눌러 사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정책 혼선은 기업들이 행정기관에 가진 불만인 △고압적 업무처리 △업무담당자 규정 미숙지 △부처 간 업무 협조 미흡 등 고질적인 관료 사회의 문제를 고스란히 밖에 보였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고 나면 기업은 책임지는데 공무원은 책임을 서로 미루려고 하니까 진전이 안 되는 것”이라며 “금융위원회 내 공학 전문가도 없으니 관료들의 전문성마저 민간은 믿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구경우·이주원기자 bluesquare@sedaily.com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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