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인류 운명의 날 시계

2915A39 만파


1947년 어느 날 미국 예술가 마틸 랭스도르프에게 한 남성이 찾아왔다. 방문객은 미국 물리학자인 하이먼 골드스타인. 그가 랭스도르프를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Atomic Scientist) 표지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 달라는 것이었다. 랭스도르프는 우라늄을 뜻하는 ‘U’자 도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핵무기의 위중함을 피부로 느끼기 힘들다는 지적에 오렌지색 바탕에 초침이 움직이는 시계로 수정했다.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는 이렇게 탄생했다.


운명의 날 시계는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만든 참회록이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대량살상무기가 가져온 참상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핵폭탄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대로 두면 자신들이 만든 발명품이 인류에게 대재앙이 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전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시급했다. 과학자와 노벨상 수상자들이 운명의 날 시계를 만든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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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시계는 핵실험이나 핵무기 보유국들의 동향, 지구온난화 등을 검토해 분침을 조정한다. 1947년 처음 등장할 당시 11시53분으로 맞춰진 분침은 이후 24번이나 바뀌었다. 1953년에는 미국과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11시58분까지 갔지만 군축과 소련의 붕괴로 자정 17분 전으로 후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운명의 분침은 빠르게 앞으로 돌아가 지난해에는 자정 2분30초 전까지 당겨졌다.

운명의 시계가 올해 또다시 움직였다. 불행하게도 뒤로 늦춰진 게 아니라 더 빨라졌다. 이제는 인류 멸망까지 2분밖에 안 남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초강경 대응이 주요 요인으로 지적됐다. 자칫 한반도 긴장이 전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한의 핵 도발은 막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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