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주장)이 ‘헐!’하고 외치자 선수들의 어깨 움직임이 더욱 빨라진다. 마법의 빗자루는 빠르게 오가며 얼음 바닥을 문지른다. 다시 스킵이 ‘워워’라고 하자 선수들의 비질 속도도 느려진다.
동계올림픽 때마다 국내 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컬링 경기의 한 장면이다. ‘헐’과 ‘워’는 컬링 경기에서 스킵이 비질로 스톤을 이끄는 두 선수, 세컨드와 서드에게 내리는 지시다.
선수들이 빙판 위에 커다란 돌을 던지고 얼음 바닥을 닦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컬링은 사실 과학의 결집이다. 컬링은 빙판 위에 그려진 표적판 중앙에 무게 20㎏의 스톤을 던지는 방식으로 중앙에 더 가깝게 다가간 스톤으로 승부를 가린다. 이때 스톤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게 선수들의 비질, ‘스위핑’이다. 컬링 경기장의 얼음 바닥에는 쇼트트랙이나 피겨스케이팅과 달리 아이스메이커가 얼음 바닥에 물을 뿌려 만든 미세한 얼음 알갱이(페블)가 있다. 스위핑은 이 페블을 깎거나 녹이는 과정이다. 스톤은 15~30초 정도 미끄러져 나가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헐(비질을 빠르게)’ ‘워워(비질을 느리게)’ 등의 동작으로 스톤을 원하는 장소에 도달하게 해야 하는 만큼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그렇다면 자칫 단순해 보이는 스위핑은 스톤의 이동 속도를 얼마나 빠르게 할까. 전문가들은 스위핑만으로도 스톤을 2~5m가량 더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한국스포츠개발원(KISS)에서 남녀 엘리트 컬링 선수 10명을 대상으로 아이스챔버(실험실) 내에서 스위핑 조건에 따른 스톤의 이동 속도를 산출한 결과를 보면 남성의 경우 스위핑 전 속도는 초속 1.24m에서 초속 0.58m로, 여성은 초속 1.25m에서 초속 0.57m로 줄어 스위핑이 스톤의 진로 속도를 높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스위핑이 컬링의 승부를 결정하는 절대 요소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이스의 상태다. 컬링 아이스는 최적의 두께를 만들기 위해 한 번에 여러 겹으로 2.5~5㎝로 얼려 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스 위에 페블을 만드는데 이때 물의 양과 물방울의 크기, 습도 등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스톤의 상태도 빼놓을 수 없다. 스톤은 스코틀랜드의 무인도 ‘에일서 크레이그’의 화강암으로 만든 제품만 올림픽에 쓰인다. 다른 지역의 스톤은 균열이 잘 생겨 올림픽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를 위해 스톤이 지급되면 선수들은 경기 전 9분간 아이스와 스톤의 상태를 체크해 전략을 짠다. 김태완 KISS 선임연구원(박사)은 “컬링 스위핑은 페블을 닦아 마찰을 줄여주고 바닥에 스크래치를 내 방향을 조절한다”며 “컴어라운드(상대 스톤을 피해 원하는 위치에 놓는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는 고도의 두뇌 게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