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0일 “정책의 당위와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가 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역설적이게도 이 지적은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였던 최저임금 정책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지금의 최저임금 혼란은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의 하소연과 전문가의 말을 외면한 채 소득주도성장론만 믿고 16.4%(시간당 7,530원)나 임금을 올린 결과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보니 땜질식 대책만 줄을 잇는다. 최저임금 정책의 결정과 시행의 문제점 네 가지를 짚어본다.
①정책의 역설
지난 1990년 미국 의회는 모피와 악어가죽·보석 등에 사치세를 적용했다. 여기에서 나온 세금은 가난한 이들에게 쓸 요량이었다. 하지만 사치세는 3년 만에 폐지됐다. 모피와 진주·악어가죽 수요가 줄면서 이를 제작·유통하는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다. 정책의 의도는 좋았지만 사치세의 부담은 백만장자가 아닌 일용 노동자에게 갔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월 157만원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금액이라는 게 청와대와 여권의 주장이다. 그러나 어려운 계층을 돕겠다는 최저임금 인상은 되레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소득을 줄이고 있다. 서울경제신문 분석 결과 최저임금 인상은 소도시, 저학력, 영세서비스업, 55세 이상의 일자리를 더 줄인다. 최저임금이 50% 오르면 저생산성 직군의 실업률은 31%까지 치솟는다.
이는 현실이다. 연초부터 연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은 최저임금 여파로 청소와 경비근로자 일자리 축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형마트와 청소용역 업체는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쉬는 시간을 늘려 대응하고 있다.
②보이지 않는 현장
청와대 고위관계자와 장관들은 올 들어 현장을 찾은 뒤에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서비스업 종사자들 임금이 연장·휴일근로수당까지 합치면 안정자금지원 기준 월 190만원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후 부랴부랴 안정자금 기준에서 초과근무수당을 빼기로 했다. 제도 시행 전에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하지 않았어도 될 시행착오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경제부처는 물론이고 국세청까지 동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실적을 매주 점검하고 있다.
당초 최저임금을 16.4% 인상할 때부터 현장의 목소리는 빠져 있었다. 관료들의 역할도 없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권 초라 공무원들조차 감히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토로했다.
③경제의 이념화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57로 전년보다 0.003 증가했다. 지니계수는 소득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멕시코(0.459)나 칠레(0.454) 등에 이은 세계 6위다. 그만큼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배경에는 이 같은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평등’ 개념과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평등인데 이를 경제에도 적용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경제를 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장은 “시장경제는 경쟁이 핵심이고 민주주의는 평등이 요체인데 문재인 정부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개념부터 헷갈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즉흥 대책이 쏟아진다. 시장논리를 해치고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사례도 잦아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속조치로 편의점·슈퍼마켓 등은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수수료 부담이 줄게 된다. 그러나 이는 다른 카드 사용자가 나눠 질 수밖에 없다.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9%에서 5%로 낮추는 방안이나 상점가 기준 확대에 따른 지원책도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 나온 무리수다.
④빈약한 경제이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폭풍은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인 소득주도성장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많다. 소득주도성장은 ‘가처분소득 증대→소비 증가→생산·투자 확대’의 경로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론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을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으로 강조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추이를 보면 장밋빛 전망은 빗나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고용이 흔들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음식·숙박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4만9,000명(-2.1%) 줄었다. 2011년 9월 이후 가장 큰 감소율이다. 경비원이 속한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도 9,000명(-0.7%)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고용이 줄면 소비 증가는커녕 소득 증대도 기대할 수 없다. 여기에 외식 업계를 중심으로 물가도 뛰고 있는데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득 증대 효과가 반감된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인위적인 임금 상승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영필·서민준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