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최저임금 한달] ① 문닫거나 해고하거나...영세공장·골목가게 일자리 되레 축소

■현장에서 본 문제

② "생산 축소→근로자 감축 악순환"...대·중기 양극화 심화

③ "명절 전후 더 올릴것"...외식·음료업 등 도미노 물가 상승

④ 일자리 줄어드는데 물가 올라 체감경기도 갈수록 '꽁꽁'



31일 서울 강남역 인근 커피전문점 입구에서 고객이 무인 자판기를 이용해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송은석기자31일 서울 강남역 인근 커피전문점 입구에서 고객이 무인 자판기를 이용해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시행 한 달을 맞은 최저임금 16.4% 인상이 실물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등 저임금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영세기업들을 중심으로 직원 감원으로 인건비 상승을 상쇄하려는 ‘일자리 구축 효과’가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늘어 내수가 확대돼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를 보기도 전에 가장 취약한 계층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역설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세업종과 기업의 근로자 감소는 생산 축소를 낳아 개별 기업의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할 공산이 큰 상황이다. 가뜩이나 양극화의 맨 아래쪽에 있는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면서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선의의 시도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조짐이다.

가장 아랫단의 인건비 인상은 연쇄적으로 물가도 밀어올리고 있다. 외식·음료업체들이 앞다퉈 가격을 인상하면서 생활물가에는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이에 더해 최저임금 1만원 이정표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가 식지 않으면서 체감경기는 악화일로다.

①일자리 축소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수제화 공장을 10년째 운영하는 이명숙(가명) 대표는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재단·재봉·밑창·마무리 등 수제화 제조를 위한 파트별 전문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맞춰주지 못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10명이던 직원을 5명으로 줄였다. 이 대표는 “주문량은 점점 줄어드는데 최저임금이 너무 급작스럽게 올라 적자”라며 “어쩔 수 없이 제가 나와서 밤새 한 파트를 맡아서 하거나 빚을 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조건에 맞지 않아 일자리 안정자금도 신청하지 못했다. 그마저 서류 작업할 인력도 없다.

비교적 규모가 큰 생리대 업체 A사도 최근 서울 시내 주요 할인점의 판매직 직원을 3분의1 줄이기로 했다. 이 회사 대표는 “판촉을 위해 그동안 인력공급 업체와 계약을 통해 40~50대 아주머니 사원들을 썼는데 인건비가 안 나오는 매장을 이참에 줄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기업과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밥그릇’을 빼앗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동네 만홧가게·김밥집·커피숍 등 골목상권의 영세한 가게와 식당들은 물론이고 소상공인, 중소 제조업체 등 곳곳에서 직원을 줄였다는 얘기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최저임금 인상 직전인 지난해 12월 한 달간 임시·일용직 근로자 39만여명이 해고됐는데 2012년 1월 이후 5년 11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②양극화 되레 심화
=충북 오송에서 식품가공업을 하는 중소 제조업체 B사의 이두진(가명)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이 2년 앞으로 바짝 다가오자 연내 시설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이 대표는 “우리 회사 규모만 돼도 은행 대출을 받아 시설 투자라도 추진할 수 있지만 영세기업 입장에서 인건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는, 회사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 대표의 걱정은 점차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영세기업들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인건비 인상에 따른 충격파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적어 ‘최저임금 인상=폐업’으로 여긴다. 간신히 근로자 수를 유지할 경우에는 마진이 줄거나 손실이 생기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문래동에서 30년째 철공소를 운영하는 박철환(가명) 대표는 인건비 인상분을 납품가에 반영하려 했지만 거래처가 난색을 표해 마진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박 대표는 “있던 직원을 내보내지 않으려면 공급가를 올려서 인상분을 보전해야 하는데 4~5차 밴더사 입장에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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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벼랑 끝에 몰리며 양극화는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격차를 벌리는 양상이다.

③도미노 물가 상승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가격 인상은 외식업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놀부부대찌개와 신선설농탕 등 가격을 올린 브랜드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죠스떡볶이는 오는 2월 중순 오징어튀김과 어묵 메뉴 등 일부 품목 가격을 10~20%가량 인상할 계획이다. 오징어 가격이 계속해서 올라 부담이 커진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점주들의 가격 인상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나 바쁜 직장인들이 자주 찾던 이삭토스트도 2월12일부터 제품 가격을 최대 300원 인상한다.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써브웨이도 2월1일부로 제품 가격을 최대 8.6%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커피빈코리아 역시 2월1일부터 가격을 200~300원씩 올린다. 이에 따라 아메리카노 스몰 사이즈는 4,5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랐다. 코카콜라음료는 2월1일부로 일부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4.8% 인상한다고 31일 밝혔다.

문제는 가격 인상이 이들 업체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감정과 정부 눈치를 보고 있을 뿐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곳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며 “명절을 전후해 더 많은 프랜차이즈들이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④체감 경기만 더 악화=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물가 상승은 체감경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경제 심리가 빠르게 얼어붙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월 중소기업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업황전망 중소기업건강도지수(SBHI)가 지난해 12월에 이어 3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급랭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제조업체 중 9.1%가 ‘인력난 및 인건비 상승’을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지난해 12월 8%에서 한 달 만에 1.1%포인트 상승해 2003년 1월(9.8%)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민정·박윤선·백주연기자 jminj@sedaily.com

정민정·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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