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작품을 그토록 하고 싶었던 배우 김여진은 ‘리차드3세’를 한 마디로 “감정의 증폭이 큰 비극이다”고 말했다.
“고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의 원류인 것 같다. 현대까지 나오는 수많은 작품이 고전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보면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을 수 있지만 계속 변주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고전 그 중에서도 비극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 그 중 ‘리차드 3세’는 비극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라 강렬하다.”
2월 6일 개막하는 연극 ‘리차드3세’(연출 서재형)는 명석한 두뇌와 언변을 가진 왕자로 태어났지만 곱추라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어릴 적부터 주변의 관심 밖에서 외면당하며 자라온 리차드3세가 권력욕을 갖게 되면서 벌이는 피의 대서사시를 그린 작품. 영국의 장미전쟁기 실존인물 ‘리차드3세’를 모티브로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희곡이다. 김여진은 리차드3세의 형수이자 피로 얼룩진 권력 쟁탈전의 경쟁구도를 팽팽히 이루며 극의 긴장감을 높일 엘리자베스 왕비역으로 나선다.
김여진은 고전 속에 담긴 ‘감정의 증폭이 큰 원시적 감정’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큰 감정의 증폭을 무대에서 배우와 관객이 함께 겪으면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지금의 자극적인 이야기에 비해, 고전은 밋밋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으로 봤던 사람들의 감정, 변화 등을 새롭게 보여준다면 어떨까. 같이 분노하고, 함께 슬퍼하게 되는게 바로 공감의 감정이다. 드라마, 영화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리차드 3세’는 지금 굉장히 스스로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
김여진의 연기자 생활은 우연히 시작됐다. 극단 봉원패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조연출로 일하던 중, 배우로 무대에 오르게 된 것. 그는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닌 일반인이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올라간거다”고 20년 전 데뷔 무대를 회상했다.
그는 “저에겐 고마운 기억인데 다른 분들에겐 죄송한 기억이다. 같이 했던 배우와 스태프 분들, 관객분들에게 정말 죄송하죠.”라며 아찔했던 기억을 불러냈다. “시행착오를 다 무대에서 겪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 때의 기억은 그에게 큰 자양분이 됐다.
”지금 같으면 겁이 나서 절대 무대에 절대 설 수 없을 듯 하다. 몰라서, 또 백지상태여서 가능했다. 그러면서 굉장히 고마운게 저만 1년 간 원캐스트였다는 점이다. 그게 나의 힘, 저력이 된 것 같다.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 때 얻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20년을 먹고 살았네요.하하“
김여진은 최근 JTBC ‘솔로몬의 위증’, KBS2 ‘드라마 스페셜-강덕순 애정 변천사’ ‘마녀의 법정’ 등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연기의 뿌리를 연극 무대에 내린 배우인 그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무대’이기 때문에 늘 연극 무대가 그리웠다고 한다.
20년차 배우 김여진은 늘 ‘변화’를 원하고 바란다. 그렇기에 “연극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방송과 연극 모두 매력이 있지만, 드라마는 계속 하면 한계가 올 때가 있다. 몇 년에 한번이라도 연극 1편씩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벌써 20년차인데 아무래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배우가 나와서 할 때마다, 그게 그거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물론 배우는 매 작품마다 새롭게 보여주고자 노력하지만 한계가 올 때가 있다. 무대에 설 때처럼 진지하게 연습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제가 갖고 있는 능력치에서 최소치를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더라.”
김여진의 최대치는 연극 ‘리차드 3세’에서 확인할 수 있을 듯 하다. 완벽을 추구하는 서재형 연출가와 함께 그는 “토씨 하나, 호흡, 동작, 걸음 등 하나 하나를 다 연구하고 다시 고치고 하는 과정을 몇 달 간 겼었다”고 했다.
그가 본 서재형 연출은 “리딩을 굉장히 철저히 하는 연출가”였다. 그래서 신선했고, 또 다른 작품을 함께 해보고 싶은 연출자였다.
“이 연출가가 어떤 식으로 연출을 할지 대부분 감이 오는 편인데, 서재형 연출은 달랐다. 리딩 시간을 굉장히 오래 가졌는데, 배우의 어투와 어미 등 사소한 것까지 다 보시고는 조금씩 고쳐주신다. 대사 하나를 넣었다 혹은 뺐다만 해도 느낌이 달라지고, 거기서 호흡을 한 뒤에 ‘아’ 하고 대사를 해보시죠 란 디렉션을 주시는데 그 때면 또 극이 확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이후 6년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김여진은 온 몸에 열정이 가득했다. “이 직업은 늘 도전이 필요한 것 같다. 이걸 부담이라고 생각하면 (배우 일로)그만 밥 먹고 살아야죠”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뚝심과 신뢰감이 느껴졌다.
“배우가 익숙해진다는 게 두렵고 싫다. 배우들은 모두 새로운 것들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늘 도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리차드 3세’가 딱 그런 작품인 것 같다. 연출가와 다른 시너지를 찾아내는 경험도 새롭고, 배우들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연극 작업은 늘 새롭다. 제 역량이 늘고 연기가 계속 늘었으면 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한편, 황정민, 정웅인, 김여진, 김도현, 정은혜, 박지연, 임기홍 등이 출연하는 셰익스피어의 정통 연극 ‘리차드3세’ 는 2월 6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