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칼럼] '수사나 형벌의 과잉과 남용'은 '적폐 중의 적폐'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최근 적폐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법적 절차대로 하겠다”는 말에다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수사)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법적 절차대로 하겠다”는 말과 “나오면 나오는 대로 한다”는 말은 서로 상충하는 말이다. 형사소송법 제 199조는 “수사에 관하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 다만, 강제처분은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안에서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오면 나오는 대로 수사를 한다’는 태도는 법을 정면으로 무시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수사는 형벌을 전제로 하고, 형벌은 국민의 자유억압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이 때문에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위해 법으로 강제처분을 이용한 수사를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해 얻은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하는 원칙을 실천할 책무를 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법기관은 이 원칙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표적수사, 기획수사, 먼지털기식수사라는 말이 난무하고, 정치보복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인구비례당 고소,고발율은 이웃나라의 100배가 넘는다. 그래서 그 많은 사건을 제대로 조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비율은 1% 남짓하고, 교도소는 법을 어긴 과밀수용으로 국제적 망신을 사는 지경이다.


왜 그럴까? 오랜 변호사 경험으로 보아 형벌의 과잉과 남용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형벌규정이 워낙 많은데다 적법절차도 지켜지지 않고, 형벌의 필요가 없는 데도 굳이 형벌을 가하다보니 조사관들이 하나같이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린다. 그러다보니 피의자의 방어권보장은커녕 건 수 채우기식의 불실수사가 만연한다. 똑 같은 행동에도 선량한 사람은 법을 믿다 무방비로 형벌을 받고, 약삭빠른 사람은 꼼수로 빠져 나가는 일이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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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은 너무 막강한 반면 방어권행사는 어렵다보니 고소나 고발로 일단 수사대상이 되기만 하면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견디기 힘든 고통에 빠진다. 그러다보니 법(고소, 고발)을 이용해 남을 골탕 먹이려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고, ‘먼저 고소하지 않으면 당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무차별적인 고소, 고발은 억울함을 낳고, 그 억울함은 보복심리로 변해 또 다른 고소,고발을 낳는 악순환은 도대체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인정과 의리는 어리석은 자의 전유물이 되고, 양심과 도덕은 설자리를 잃는다.

자고로 역사를 보면 형벌이 횡행한 나라치고 쇠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지금도 강자가 법을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는 그릇된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20세기에 이를 때까지 법으로 노예를 둔 나라였다. 막상 법으로는 1894년 노예제도가 폐지되지만 곧 나라를 잃게 돼 전 국민이 노예 상태에 빠지는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다 해방 후에는 일제 잔재가 득세하는 바람에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여기기는커녕 사건을 조작해 국민을 때려잡는 죄악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폐습이나 죄악은 형벌의 과잉과 남용 없이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요즘 ‘적폐’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러나 역사나 현실을 볼 때, ‘수사나 형벌의 과잉과 남용’이야 말로 ‘적폐 중의 적폐’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적폐 중의 적폐’로 적폐를 없앤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기껏해야 나무의 가지치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가 더 크고 튼튼하게 자라듯 적폐 중의 적폐로 적폐를 제거한들 가장 근본적인 적폐는 더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적폐 중의 적폐가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면, 그때는 지금 같은 적폐청산의 기회조차 얻기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걱정이다./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조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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