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근로시간 단축제를 업종별로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이른바 ‘플렉스아워(flex-hour)’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쉼 없는 연구개발(R&D)을 바탕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선 반도체 등 우리 산업의 기술경쟁력이 뒤처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1일 산업부에 따르면 백 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세미콘코리아2018 행사에 참석해 “산업의 경쟁력 차원에서도 (근로시간 단축 이슈를) 봐야 한다”며 “산업 경쟁력을 고려해 업종별 플렉스아워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렉스아워란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일정한 기간의 총 근로 시간을 정하고 각 일이나 주당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일종의 탄력근무제도다. 예를 들어 노사 간 합의로 1개월의 기간 동안 총 근로시간을 270시간으로 정한 탄력근무제를 운영하게 되면 주당 근로시간(현행 68시간)을 넘겨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출퇴근 시간을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근무제 (flexitime)와는 다른 제도다.
백 장관은 반도체 등 R&D 업종의 특수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반도체 업종이 특수하다면 전반적인 차원에서 한 번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며 “고용노동부, 관련 부처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어떤 산업의 특이성과 업종별로 (근로시간 단축제를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백 장관의 발언은 최근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나왔다. 여야는 지난해 11월 근로시간 3단계 감축 시행안에 합의한 바 있다. 이 안에 따르면 종업원 수 300인 이상인 기업은 내년 7월부터 근로 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줄어든다. 50~299인은 2020년 1월, 5~49인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여야가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했지만 이를 두고 기업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지난해 12월 국회를 찾아 “근로시간 단축이 연착륙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특히 중소기업계는 최대한 시행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종업원이 5~29인인 영세 중소기업에는 실태 조사 후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주당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달라는 게 중소기업계의 요구다.
플렉스아워가 도입될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도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 개최한 비공개 정책간담회에서 “현행법에서 최대 3개월까지 허용하고 있는 탄력적 근로 시간제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해달라”고 건의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도 반기는 분위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시간을 6개월, 1년까지 늘리는 방향이라면 기업 부담을 한층 덜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