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정운찬 KBO 총재가 지난 2013년 내놓은 책 ‘야구예찬’의 2장 제목이다. 물론 KBO 총재를 맡기 훨씬 전에 쓴 것이다.
정 총재는 알아주는 야구광이다. 경기중학교 야구부 후보선수로 시작해 서울대 부임 후에는 야구반 지도교수로 활동했다. 라디오 중계방송의 개막전 특별 해설위원으로 나서는가 하면 2012년에는 시구자로 미국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유학 시절에는 메이저리그에 빠져 박사학위를 1년 늦게 받았다. 서울대 총장 취임 다음날에도 두산 베어스 경기를 ‘직관(경기장에서 직접 관전)’할 정도로 골수 두산 팬이기도 한데 대학 시절 두산그룹 장학금을 받은 게 인연이 됐다. 정 총재는 “KBO 총재가 됐으니 이제 어느 팀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탈(脫)두산’ ‘출(出)두산’해야 한다”며 웃어 보였다.
정 총재는 미국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당시 뉴욕 메츠를 좋아했는데 아침에 학교 도서관에 가면 뉴욕타임스를 꼭 1시간씩 읽었다. 주로 3~4페이지나 되는 야구 면을 읽는데 시간을 오래 들인 것 같다”고 했다. 야구에 미쳐 박사학위가 늦어졌지만 컬럼비아대 교수 면접 때는 야구 이야기로 ‘점수’를 얻기도 했다. “1976년이었어요. 2박3일 간 7명의 면접관과 차례로 만나야 했는데 첫 면접관의 질문이 이거였어요. ‘우리 대학은 미국의 지도자를 길러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미국 문화에 대해서 좀 아느냐.’ 그러면서 ‘메이저리그는 어느 정도 알아야 미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정 총재는 좋아하는 투수 톰 시버(메츠), 좋아하는 타자 레지 잭슨(뉴욕 양키스)의 인생 스토리부터 사소한 기록까지 줄줄이 읊었다. 그렇게 야구 얘기로 1시간 이상 ‘어필’했고 첫 관문을 잘 통과한 덕에 다른 면접관들도 호감을 갖고 정 총재를 대했다.
정 총재가 인생의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야구 유니폼이다. 1호 보물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때 대표팀 모든 선수가 사인한 이승엽 유니폼. 2호는 조 토리가 뉴욕 양키스 감독이던 시절 그에게서 전해 받은 사인 유니폼이다. 3호는 메이저리그 시구할 때 입었던 토론토 구단의 77번 유니폼.
정 총재는 야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 뭐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역전’이라고 답했다. “9회 말 2아웃 볼카운트 3볼 2스트라이크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스릴이 있잖습니까. 제가 야구 팬으로서 경험한 스릴과 감동을 그라운드에서, 그리고 야구 행정과 마케팅에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