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美베테랑 외교관’ 새넌마저 퇴장…트럼프 행정부 내홍 심화

美 외교서열 3위 새넌 차관 사임

차관·차관보 자리만 13석 공백

한국 등 주요국 대사도 인선 차질

“트럼프 행정부 내 갈등 표출” 지적

렉스 틸러슨(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2월2일(이하 현지시간) 톰 새넌(왼쪽) 국무부 정무차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단에서 국무부 직원들에게 연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 국무부에서 가장 베테랑 외교관인 새넌은 지난 1일 사퇴를 밝히며 많은 국제적 과제들에 직면한 국무부에 타격을 가했다. /AP연합뉴스렉스 틸러슨(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2월2일(이하 현지시간) 톰 새넌(왼쪽) 국무부 정무차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단에서 국무부 직원들에게 연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 국무부에서 가장 베테랑 외교관인 새넌은 지난 1일 사퇴를 밝히며 많은 국제적 과제들에 직면한 국무부에 타격을 가했다. /AP연합뉴스


“노련한 베테랑이 미국 국무부를 떠났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미 국무부 서열 3위인 톰 새넌 정무차관의 사임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북한의 핵 위협 등 외교적 우려가 커지는 시기에 빅터 차 주한 대사 내정자의 인사 철회에 새넌 차관의 사퇴가 더해지면서 대북정책과 한미공조에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현재 미 국무부에는 국제 안보 담당 등 13석의 핵심 포스트가 공석인 가운데 한국 등 주요국 대사 인선도 차질을 빚으며 외교 라인 마비사태를 겪고 있다. 이처럼 외교 공백이 깊어지자 일각에서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의 기싸움에서 밀려 입지가 쪼그라든 사이를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 대사가 치고 들어오는 등 트럼프 행정부 내 암투가 사태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새넌 차관은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개인적인 이유로 사임하고자 한다”며 “가족을 돌보고 인생을 돌이키며 남은 삶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만류 끝에 “슬프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사의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넌 차관은 지난 35년간 6명의 대통령과 10명의 장관 아래서 외교관을 지내며 미 외교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국무부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가진 탓에 틸러슨 장관은 그를 “국무부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며 외교가의 ‘롤모델’로 여겨왔다고 CNN은 전했다.

새넌 차관의 사임으로 미국의 외교 공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트럼프 정부가 수많은 국제적인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국무부에 가해진 타격”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대중국, 대중동 전략에서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베테랑 외교관인 새넌 차관의 사퇴가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CNBC방송도 “트럼프 행정부가 수많은 국제적 도전에 직면한 셈”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외교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새넌 차관뿐만 아니라 국무부 내 차관과 차관보 자리 13석이 공석인데다, 최근 차기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됐다가 돌연 낙마한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낙마를 비롯해 주요국 대사 인선도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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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속 국가 대사들과 점심을 갖는 도중 발언하는 모습을 렉스 틸러슨(왼쪽) 미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오른쪽)유엔 주재 미 대사가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속 국가 대사들과 점심을 갖는 도중 발언하는 모습을 렉스 틸러슨(왼쪽) 미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오른쪽)유엔 주재 미 대사가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이처럼 인적 공백이 장기화하는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내 갈등 심화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무부와 백악관의 불협화음에 더해 국무부 내 내부문제도 한 몫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새넌 차관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사의를 표한 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그간 국무부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등 각종 외교정책을 놓고 국무부와 각국에 파견된 외교관 간 이견이 적지 않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특히 틸러슨 국무장관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간의 기 싸움으로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넌 차관의 사임에 앞서 국무부가 빅터 차 주한 대사 내정자의 인사를 몰랐던 사실을 두고도 “대북 강경파인 맥매스터와 외교적 노력을 우선하는 틸러슨 간의 긴장관계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CNN방송은 전했다.

틸러슨 장관은 백악관과의 불통뿐만 아니라 국무부 내부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사이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사실상의 국무장관’으로 행동하며 틸러슨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백악관 사람들은 조국을 사랑하고 대통령을 존경한다”, “누구도 대통령의 (정신적)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며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헤일리 대사는 틸러슨이 대북 대화 노선을 강조할 때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어떤 대화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180도 다른 주장으로 선을 긋고 있다.

백악관도 헤일리 대사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헤일리는 틸러슨이 물러날 경우 가장 유력한 차기 국무장관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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