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여명] 기업을 춤추게 할 시간은 아직 늦지 않았다

홍준석 산업부장

30년전 이념적 잣대로 시장 규제

급변하는 4차혁명시대 도태 우려

文대통령 잇단 현장소통 계기로

기업, 국정 수행 동반자로 봐야

홍준석 산업부장




요새 우리 사회가 놀랄 일이 참 많아졌다. 안으로는 각종 사고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고 밖으로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북한과의 전쟁을 운운하는 미국의 초강경 기조와 종잡을 수 없는 북한의 이중적 태도가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일 열린 국내 경제학자 1,000여명이 1년에 한 번 모이는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야말로 문재인 정부를 화들짝 놀라게 했을 소식이 아니었나 싶다. 연구성과를 나누는 학술의 장이 정부의 아마추어 경제정책의 성토장이 됐음은 물론 나이, 전공, 경력,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경제학계 원로와 소장파들 모두 청와대 참모진과 정부 경제팀을 향해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등 이론과 이상에 치우친 일방통행식 정책과 규제 일변도의 기업정책, 수요만 억제하는 부동산 헛발질정책 및 오락가락 교육정책 등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들의 고언은 결국 ‘정부가 시장논리를 거스르지 말라’로 귀결된다. 한 경제학자의 발언처럼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고 이념대로 경제를 끌어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없어져야 하고 적극적인 규제개혁과 국민과의 소통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국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정부가 기업을 혁파할 객체로 보는 시각을 고치고 국가주의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따끔한 질책이다.


이들 경제학자의 말마따나 문재인 정부는 기업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두드러진다. 거대기업의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나 홀로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통상임금 패소, 노동이사제 도입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반기업정책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며 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을 적폐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과거의 관행을 일거에 해소하려는 야심 찬(?) 의지가 없다면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은 정책들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진이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 가졌을 법한 ‘재벌=나쁜 넘’이라는 이념의 잣대를 30년이 지난 지금 변함없이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설사 그렇다면 시장개입과 규제로 기업을 길들일 수 있다는 낡은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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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 기업들이나 경영환경은 30년 전 모습이 아니다. 권력자에게 기대 떡고물을 기대하는 시대도 아니며 기업들은 무한경쟁 시대에 생존을 위해 혁신에 목숨을 건다. 특히 4차 혁명 시대를 맞아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급변하는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변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되는데 정권을 기웃거리며 허투루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한화큐셀을 찾아 “업어드리고 싶다”며 일자리 모범사례라고 치켜세우고 다음 날 바로 현대차 자율수소차인 ‘넥쏘’를 시승하고 “미래차에 국가적 역량을 모으자”고 한 발언은 정부 기업관의 변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불통으로 일관하던 정부의 기업 마인드가 문 대통령의 연이은 기업 방문을 계기로 소통에 나서겠다는 사인을 보낸 것 같아 주목된다”고 전했다.

거듭 말하지만 기업은 적폐의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과거처럼 무조건 까란다고 깔 수도 없다. 정권에 복종하는 시대는 지났고 30년 전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속칭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처럼 미리 결론을 내고 윽박지르듯이 기업은 따라오면 된다는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이는 기업을 국정 수행의 동반자로 봐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손을 잡고 같이 고민하고 협력하자면 마다할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기업을 춤추게 할 시간은 아직 늦지 않았다.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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