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씨의 재판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씨의 재판은 이 부회장의 선고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선고를 오는 13일로 미룬 상황인 만큼 이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의 판단은 이들 재판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열린 이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나타난 재판부의 판단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더욱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 행위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점은 박 전 대통령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대신 승마 지원 부분이 뇌물공여로 인정됨에 따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날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책임을 명확히 해 오히려 불리한 측면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들 책임을 지적한 만큼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에 이날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할 가능성도 커 현재진행 중인 재판에 일정 부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대해 최종적으로 코어스포츠로 송금한 36억원을 뇌물공여로 인정했다. 1심에 이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대해 뇌물수수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항소심에서도 인정하면서 36억원은 이들이 받은 뇌물로도 인정됐다.
실제 재판부는 뇌물공여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들에 대한 강도 높은 질책을 이어나갔다. 이날 재판부는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씨는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했으며 피고인들은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뇌물공여로 나아간 사안”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죄에 대해 ‘요구형 뇌물 사건’이라며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은 헌법상 부여받은 책무를 외면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타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있다”고 규정했다. 또 “우리 형사법체계는 공직의 부패에 대한 책임을 공여자보다 공무원에게 더 무겁게 지우고 있다”며 이들의 죄가 가중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뇌물수수죄의 금액이 1억원을 넘을 경우 특가법이 적용되면서 형량이 가중된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특검이 주장했던 ‘0차 독대’와 1심에서 이 부회장의 징역형을 선고하게 했던 ‘묵시적 청탁’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이들의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