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검사들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발로 ‘한국판 미투’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최영미 시인이 지난해 한 인문교양 계간지에 발표한 ‘미투 시(詩)’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에 수록된 최 시인의 발표작 ‘괴물’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황해문화를 발간하는 새얼문화재단은 ‘젠더전쟁’을 주제로 지난해 겨울호를 준비하면서 최 시인을 비롯한 5명의 여성 시인들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최근 몇 년간 심각하게 증폭된 여성혐오와 젠더 갈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페미니즘 지향을 가진 다섯 명의 문인들에게 원고를 청탁했다”며 “최근 미투 운동이 재조명되면서 최 시인의 시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괴물’에서 최 시인은 젊은 여성 시인은 물론 여성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일삼는 한 시인을 고발했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중략)/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이 나라를 떠나야지/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최 시인은 지난해 4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문단 활동을 막 시작할 무렵 성희롱을 일삼는 한 원로 시인에게 ‘이 교활한 늙은이야’라고 소리쳤다가 그 이후 문단 내 왕따가 됐다”며 “언젠가 이런 문제들을 낱낱이 밝히고 싶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누리꾼들은 가해자 ‘En’으로 추정되는 시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추측에 대해 최 시인은 “그 시는 문학작품으로 봐 달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