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인교칼럼] 보호무역주의 시대, 우리 기업의 통상역량

인하대 대외부총장·국제통상학 전공

美 세이프가드 발동 예고 불구

기업들 수출시장 확대에만 전력

정부의존적 통상정책 대응 탈피

자체 분석역량 키워 전략수립을

정인교 인하대 교수정인교 인하대 교수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각각 최고 50%와 30%의 관세 부과와 쿼터(TRQ) 설정을 내용으로 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세이프가드는 단기간 내 수입품 증가로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 혹은 피해 우려가 제기될 경우 국제적으로 허용되는 통상제도다.


보호무역으로 산업을 지킨다는 것은 국제경제학 이론과도 맞지 않고 소비자 부담만 가중시키게 된다. 더구나 글로벌가치사슬(GVC) 확대로 국내외 산업 연관성이 높아진 현 상황에서 핵심 부품 수입에 장애가 생기면 국내 산업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번 세이프가드로 미국 태양광 조립업체 종사자 2만명이 실직하게 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수입 증가와 산업 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고 수출국에 대한 보상 의무가 있기 때문에 세이프가드 발동은 쉽지 않다. 이번 미 세이프가드도 지난 2002년 철강 세이프가드 이후 16년 만이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발동한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표심을 붙잡아야 하고 선거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들에 환심을 사야 하는 트럼프 진영의 선거전략이 크게 작용했다. 석탄 산업보다 재생에너지 산업의 종사자가 훨씬 많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적에도 태양광 같은 혁신산업보다는 러스트벨트와 부합하는 전통산업의 부활을 외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과도한 보호무역주의를 먼저 비난해야 하겠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유수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 업계도 이제는 미국 등 주요 국가의 통상정책 동향 분석과 통상 마인드를 높여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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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문제가 되는 세탁기는 이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무역제재가 시작됐고 중국·동남아시아로 생산거점을 옮기면서 화살을 피하고자 했으나 미국은 세이프가드로 국적 불문하고 수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중국 제조업의 빠른 ‘캐치업’과 미중 간 경쟁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신자유주의, 일명 워싱턴컨센서스가 대외경제정책 기조로 돼 있을 때 미국은 상품 시장을 일부 내주더라도 서비스 수출, 지적재산권 로열티 및 제조업 핵심 기술력 유지로 경제성장 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러한 기존의 정책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중국 제조업의 위력을 실감하게 됐다. 때마침 셰일가스 혁명과 산업의 디지털화로 제조업 경쟁력 강화 기회를 잡은 미국은 자국 제조업 보호를 노골화하게 됐다.

동물적 정치감각을 지닌 트럼프 후보는 보수적인 국가론에다가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보면서 현재의 통상정책 구도를 수립했을 것이다. 또 현 백악관 무역국장인 피터 나바로가 미국 러스트벨트 제조업 보호 논리를 제공했다.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미국 내 기류 변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수출 시장 확대를 위해 전력을 쏟았다. 미국 시장에서 1% 점유율이 갖는 의미는 막대하다. 그럼에도 국산 세탁기 브랜드는 2012년 22.1%(160만대)에서 2016년 35.2%(320만대)로 13.1%포인트 늘어났다. 미국 브랜드인 월풀과 켄모어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56.5%에서 45.7%로 낮아졌다. 이번에 세이프가드가 적용된 태양광도 시장점유율 7위(2.7%)에서 3위(15.6%)로 높아졌다.

생산과 마케팅 역량에서 우리 기업은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통상정책 분야는 여전히 정부 의존적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제연구소의 인력구조를 봐도 통상 전문가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상당 기간 보호무역주의가 지속될 것이고 우리 기업들은 서둘러 통상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주요 거점 국가의 통상정책과 현지 경쟁업계의 동향을 종합 분석해 정책당국과 공유하고 기업의 해외 마케팅 전략에 적극 반영해야만 오늘날의 소나기 무역제재를 피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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