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회복과 수출 호조에 힘입어 국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빚에 발목이 잡혀 과거 경기회복기에 비해 소비 회복세가 현저히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8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4·4분기부터 지난해 3·4분기까지 민간소비 증가율은 2.3%에 그쳤다. 같은 기간 동안 평균 소비 증가율이 6.2%였던 과거 6차례 경기회복기와 비교하면 더딘 속도다.
수출·투자와 달리 현재 소비 회복세가 현저히 느린 것은 가계가 소비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9월말 기준 이미 1,400조원을 훌쩍 넘어선 반면 가계소득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실제 가계의 실질소득 증감률은 지난해 1~9월 전년 동기 대비 0.8% 쪼그라들어 7년 만에 마이너스 전환(-0.4%)했던 2016년에 비해 감소폭이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허진호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가계부채의 총규모는 여전히 굉장히 큰 편이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도 계속 올라가는 중”이라며 “가계가 소비를 할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과거 경기회복기에 비해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비가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앞으로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최근 경기 회복기는 세계 경기회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은은 과거 6차례 경기회복기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경기회복기는 대체로 세계경제의 회복 국면과 일치했다”며 “글로벌 경기 상승이 동반된 회복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회복세가 더 강했고 회복기간도 길었다”고 분석했다.
미국을 필두로 유로존, 일본 등이 저금리 시대를 끝낼 준비에 나선 가운데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점진적인 속도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경기회복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한은은 “글로벌 경기회복기에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완화정도를 축소하면서 정책금리를 빠르게 큰 폭으로 인상했다”며 “과거와는 달리 주요국이 통화정책의 완화정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해나갈 것으로 보여 통화정책 충격이 경기회복세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