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 소재 승강기 유지보수전문 A사는 지난달 초 경기도 한 아파트 단지의 승강기(엘리베이터) 유지보수 계약을 따냈다. A사가 해당 아파트와 계약한 승강기 1대당 1개월 유지보수료는 2만5,000원에 불과했다. 최소 10만원은 받아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다른 업체로 계약이 넘어갈 수 있어 A사의 김경선(가명·48) 대표는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서에 싸인했다.
#경기 의정부 소재 승강기 제조·유지보수 B사는 내년부터는 유지보수 부문 사업을 접을 계획이다. 승강기 유지보수료 출혈 경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익이 줄어드는데 최저임금은 올라 인건비가 오른 탓이다. 박선욱(가명·54) B사 대표는 “기술자 양성도 해야 하고 철저한 안전 점검도 필요하지만 악순환”이라며 “인건비 부담분을 상쇄하기 위해 부품교체를 자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그나마 우리 회사는 제조 비중이 커서 유지보수 부문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승강기 유지보수 시장에서 ‘출혈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난 2016년 국민안전처가 ‘승강기기술안전관리법 개정안’에 최저가입찰경쟁을 막을 수 있는 규정을 넣어 개정했지만 사실상 효력이 없는 상황이다. 승강기제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1조 4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승강기 표준유지관리비는 전기식 승강기는 1개월에 1대당 18만2,000원, 유압식 승강기는 17만9,000원, 점검시간은 53분이지만 지켜지는 곳은 거의 없다.
사정이 이렇자 영세업체들 중 일부는 수익을 남기기 위해 날림 점검을 하고 있다. 아파트나 건물의 관리인들 사이에서는 승강기 보수 기술자들이 볼펜 하나 들고 다니며 5분 만에 ‘이상없음’ 란에 체크한다고 해서 ‘볼펜점검’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보수료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으면 정부에서 특별조사를 나오지만 제재가 어렵다. 15년째 충남 천안에서 승강기 유지보수 사업을 해 온 이전술(가명·54) 대표는 “아파트나 건물 관리 측은 서비스 공급처와 협상해서 소비자가 이익을 누리는 건데 왜 문제가 되냐고 도리어 따진다”며 “그렇게 싼 가격만 찾아다니다가 사고라도 나면 제조사와 유지보수업체 탓으로 돌린다”고 전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승강기 이용자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 중상 등의 피해가 발생한 승강기사고 중 절반이 유지보수업체들의 부실 점검으로 발생했다. 지난 10년간 승강기 사고 319건 중 관리부실로 인한 사고는 56건에 달한다.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영세 승강기 유지보수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승강기 기업을 찾아가 협력사로 써달라고 매달리고 있다. 대기업 승강기 제조사가 10만원에 계약을 따오면 영세업체가 대신 승강기를 보수한 후 대기업 제조사로부터 6만원을 받는 식이다.
보통 대기업과 영세업체 간 이익 배분 비중은 4대6 또는 3대7 정도다. 직접 입찰로 계약했을 때 3만원도 못받는 것을 감안하면 수익은 2배 이상이다. 이 대표는 “대기업 승강기 제조사들은 대량으로 저렴한 가격에 승강기를 공급할 수 있어 유지보수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가격협상력이 있다”며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한 영세업체들에게 선택권은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규제와 안전인증만 늘릴 게 아니고 산업 구조의 모순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주성 한국엘리베이터협회 전무는 “승강기 유지보수 업체는 전국에 약 800개로 대부분 영세한 데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 기준이 강화되고 규제만 많아진다”며 “하지만 아무리 법으로 정해도 산업 생태계의 고질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사고를 막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장 전무는 “승강기 제조·설치·유지보수 시장이 법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산업 개선 정책을 펼치면서 안전 문제도 챙기는 투트랙 방식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