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니 내 인생의 80%를 채워준 존재가 바로 친구이더군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으니 이 책은 내 책이라기보다 우리의 책이랍니다.”
프랑스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주영(사진)씨는 자신의 첫 에세이집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나비클럽 펴냄)’를 이렇게 소개했다.
최근 만난 이 작가는 “친구라는 존재는 내가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들은 지금 내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특별함 때문이라고 스스로 깨닫게 한다”면서 “친구는 내가 우울함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자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인도해준 안내자”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인생의 길치’라고 말하는 이 작가는 이어 “친구는 나를 찾아가는 혼돈의 여정 속에서 만난 지도”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이 작가는 일본 메지로대학에서 일어 일문학을 공부하고 국내에서 기자, 방송국 구성작가, PD, 통번역가 등으로 서른 중반까지 일하다 홀연히 이탈리아로 떠났다. 로마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와 곡절 끝에 결혼하고 화가가 된 지금은 친구 같은 남편과 파리에서 살고 있다.
책은 그동안 그가 만났던 친구의 이야기를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무엇을 배워야 한다, 어떤 것을 느껴야 한다는 식의 강요 대신 작가의 친구들이 편안하게 등장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친구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바쁘다, 사는 조건이 달라져 나랑은 이제 할 이야기가 없어졌다 등등의 핑계로 만난 지 오래된 친구들의 안부를 궁금하게 만든다.
책에 등장하는 친구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가 친구를 사귀는 데는 조건이 없는 듯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선입은 아예 없다. 나이·성별은 물론 국적·피부색·성장배경 등 모두 불문이다. 애완견을 위한 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카메라맨, 벨기에에서 도자기를 굽기 위해 동성혼을 꿈꾸는 이성애자. 삼청동 한옥집 마당쇠, 화수분처럼 퍼주는 일본 새댁, 박학다식한 철부지 라틴어 교사 등등 친구와 사귀는 재주도 남다르다. 낯선 곳에 가면 어김없이 친구가 나타난다. 이 작가는 “친구는 시간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라면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친구가 되어 내 손을 잡았다. 손만 뻗으면 친구는 늘 있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나 화가가 되리란 꿈은 꿔본 적이 없지만, 그를 화가로 변신시켜준 주역도 친구로 만났던 지금의 남편이다. 2014년부터 본격적인 수업을 받고 2015년 파리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린다면서 저를 아뜰리에로 이끈 친구는 지금의 남편인데 처음엔 장난삼아 다녔다”면서 “하지만 첫 전시회를 통해 작가로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겠다는 그런 다짐이죠”라면서 화가로서의 자존감을 밝혔다.
이번 한국 방문은 국내 첫 전시를 위해서다. 오는 3월 6일 돈의문 박물관 마을 갤러리 G5에서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전을 개막한다. 책에 소개된 이미지의 원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작가는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 아닌 탓에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실수도 많았지만 책을 쓰면서 나를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 존재가 친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외롭고 우울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누구든 친구에게 연락하라고 권하고 싶다. 친구는 손만 뻗으면 다가온다”면서 활짝 웃었다.
책은 이런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친구를 자칫 경쟁상대로만 여겨온 감수성 예민한 10대, 사느라 바빠 친구는 안중에 없는 20~30대, 친구는 젊을 때나 사귀는 거라는 선입견에 빠진 40대 이상의 중년 등등.. 그래서 SNS 등으로 인스턴트 같은 사이버 관계를 맺어가지만 늘 마음 한 곳이 텅 빈 듯 시린 경험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indi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