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강남지역의 한국GM 쉐보레 전시장.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도는 이곳에는 판매사원 박모(45)씨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는 “설 당일을 제외하고는 연휴 기간에 매장문을 열었지만 계약은커녕 고객 보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국GM 영업사원 사이에서 판매실적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서울지역의 한 임원급 딜러는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계약물량이 30% 넘게 줄었다”며 “같은 사무실의 다른 영업사원 중에는 지난해 1~2월에 비해 70%나 실적이 빠진 사람도 있다”고 푸념했다. 이미 계약한 고객의 이탈도 심각하다. 이 딜러는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말리부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군산공장에서 만들던 크루즈나 올란도를 계약한 고객들이 공장 폐쇄 결정 이후 집중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있다”며 “잔금을 치르기로 한 고객 중 상당수도 고민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인터넷동호회 분위기 역시 비슷하다. 회원 수가 27만명에 달하는 크루즈 인터넷동호회 카페에는 ‘계약금을 걸고 왔는데 다시 고민이 많아졌다’ ‘잔금과 취득·등록세도 다 냈는데 출고를 연기할지 고민’이라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회원들의 답글 역시 ‘취소하고 상황을 좀 더 지켜봐라’ ‘나 같으면 추가 할인을 안 해주면 취소하겠다’는 내용 일색이다. 심지어 폐쇄가 예정된 군산공장이 아닌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는 ‘말리부’ 계약을 취소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47개 답글 중 24개가 취소하라고 조언했다.
이대로라면 정부 지원안이 나오기도 전에 소비자의 외면으로 한국GM 영업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서울 서초구의 한 영업점 직원은 “한 달 넘게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한 직원이 태반이라 딜러들도 안절부절”이라며 “젊은 딜러를 중심으로 이탈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대책을 내놓더라도 이런 분위기가 쉽사리 잡힐 것 같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이날 강남의 한 쉐보레 영업점을 찾은 직장인 김명수(가명·41)씨. 그는 응대하는 영업사원에게 “철수한다는 데 추가 할인은 없느냐”고 따졌다. 영업사원은 지난 1월 한국GM이 선보인 판촉행사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차종별 할인 가격을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김씨는 “적어도 100만원 이상 추가 할인을 생각하고 왔다”며 “현금으로 구매할 의사도 있으니 추가 할인 계획이 잡히면 연락해달라”고 통보하듯 말했다. 해당 영업사원은 “그나마 영업점을 찾아오거나 전화로 오는 문의는 저분처럼 추가 가격 할인이 없느냐는 것들뿐”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철수설이 나돌던 지난해부터 판매는 고꾸라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서울 지역 영업점의 한 딜러는 ‘단종이 결정된 크루즈나 올란도의 계약을 해지하려는 고객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계약 물량이 있어야 해지 문의가 있을 것 아니냐”면서 “올 들어 우리 지점에서 해당 차종을 판매한 실적 자체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1월 한국GM의 판매량은 7,84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1,643대) 대비 32% 넘게 감소했다. 이 딜러는 “기존 고객이 많고 관리를 잘하는 딜러들의 경우 일부 재판매가 이뤄지겠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신규 고객 확보는 어렵다는 게 판매직원 대부분의 인식”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철수설에 판매부진이 심화하면서 딜러의 동요가 커지는 점이다. 한국GM의 판매망은 직영점 없이 모두 위탁영업점 체제로 구성돼 있다. 서울의 한 영업점 직원은 “우리 지점은 11명의 딜러 모두 40대 이상이라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주변 매장은 사뭇 다르다고 들었다”며 “대부분의 딜러가 현대·기아차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도원·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