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번엔 유한킴벌리 면죄부 의혹...다시 도마 위에 오른 '리니언시'

135억대 정부입찰 담합 불구

과징금-법인·개인 제재 피해

'을'인 대리점들만 처벌 받아

임직원 검찰 고발도 공표 안해

공정위 어설픈 운영실태 논란





135억원대 정부입찰 담합을 벌인 유한킴벌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니언시(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를 이용해 면죄부를 받고 ‘을’인 대리점만 처벌받도록 해 제도 악용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리니언시’ 제도의 불공정성 문제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더해 공정위가 유한킴벌리 임직원에 대한 검찰 고발 결정을 외부로 알리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시인하면서 리니언시 제도의 어설픈 운영실태도 내보였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정부 입찰 담합으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법인 고발 조치를 받은 유한킴벌리와 23개 대리점 담합사건에서 유한킴벌리 임직원 5명을 검찰 고발한다는 내용을 누락한 사실을 인정하고 19일 사과했다. 유한킴벌리가 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면죄부’를 받아 해당 임직원들에 대한 고발이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내려진 조치라는 게 공정위의 입장인데 석연치 않은 해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의 정보 은폐 논란에 그치지 않고 리니언시 제도의 불공정성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함께 담합했지만 ‘갑’인 유한킴벌리는 제도를 이용해 과징금은 물론 법인과 개인 고발까지 모든 제재를 피했고 ‘을’인 대리점들만 과징금 제재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1997년 도입된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에 가담한 사업자가 자진 신고할 경우 제재를 감면해주는 제도로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일반화됐다. 2005년부터 1순위 자진 신고 기업의 과징금을 전액 감면해주면서 국내에서도 이 제도가 활성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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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번 유한킴벌리 사건처럼 리니언시를 악용하는 기업이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2011년에는 노래방 기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금영과 TJ미디어가 노래방 반주기와 신곡 가격 등을 올리는 담합을 해 대규모 과징금을 맞았지만 리니언시 제도로 과징금을 면제 받았다. 하지만 공정위가 재조사한 결과 리니언시를 활용하는 방안까지 담합한 사실이 알려져 다시 제재를 받았다. 2001년부터 이어진 국내외 항공사의 항공화물 운송요금 담합 사건에서는 담합을 주도한 해외 항공사가 리니언시를 통해 ‘면죄부’는 받아놓고 민사 소송 등을 우려해 한국 공정위에 조사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국회와 시민사회에서 리니언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담합을 주도한 업체에 대한 제재 감면은 사법 정의에 어긋나는 데다 1순위 자진신고자의 과징금 100% 감면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이에 공감하고 리니언지 제도를 손질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한계가 있다. 우선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서 리니언시 제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공정위에 적발된 담합사건 45건 중 27건(60%)이 리니언시를 통한 것이었다. 담합이 포함된 공정거래법상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놓고 검찰과의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김 위원장은 표면적으로는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공정위에 리니언시를 한 기업이 검찰 조사를 받아 충돌이 일어날 우려를 내비쳤지만 내부적으로는 공정위가 독점하고 있는 전속고발권을 쉽게 내놓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하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담합 사건의 경우 제재의 필요성이 크지만 그 증거를 찾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리니언시 제도가 도입됐다”면서 “제도 개선을 두고서 도덕적 기준을 우선할 것인지, 현실적인 여건을 우선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겠지만 절차상의 문제나 ‘을’인 중소업체들의 법률 소외 문제 등은 공정위가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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