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시장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새로운 ‘변동성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진단도 눈길을 끈다. 통화정책 기조 변화로 채권금리가 급등세로 돌아서고 주가는 큰 폭으로 조정되면서 투자 분위기가 경색됐다. 이달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저금리 축제의 종말’이라는 소리가 실감 난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서도 변동성 확대의 폭발력을 지닌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우려가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올해 들어 급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1만 달러를 넘어 지난 2개월간 최저가 대비 70% 반등했다. 국내 투자자 패닉도 진정되면서 국제가격 대비 프리미엄도 해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암호화폐 이슈는 여전히 휴화산으로 남아 있고 금융시장의 아킬레스건이다. 암호화폐 논란은 기능과 가치에 대한 극명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범용 결제수단 역할 여부, 블록체인 혁신과의 기술적 관계, 거래의 투명성·신뢰성 확보와 투자자 보호, 그리고 합리적 규제체제 정립 등이 풀어야 할 난제다.
높은 가격변동성과 낮은 예측 가능성은 암호화폐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서 기인한다. 최근에는 암호화폐보다 암호자산(Crypto-asset)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지적과 함께 가상통화 출현을 화폐제도 혁명으로 보는 건 무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난 한 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 비중이 반 토막 나고 1,500여개의 코인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가치보전이라는 화폐의 보편적 기능에 대한 회의론도 커졌다.
10년 전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같은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제로(0)로 떨어진다고 보는가 하면 일부 투자기관들은 5만 달러까지 뛴다는 파격적 예상을 내놓고 있다. 내재가치 없이 수급에만 의존하는 암호화폐의 시장가격은 전통적 금융자산 대비 변동 폭이 클 수밖에 없다. 연이은 해킹과 파산으로 거래소의 공신력이 떨어지면서 거래 투명화와 신뢰 제고를 위해 거래소에 대한 엄격한 자율규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불법 자금세탁이나 해킹에 노출되는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면 암호화폐의 제도권 진입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암호화폐가 기반으로 하는 블록체인은 ‘제2의 인터넷 혁명’으로 불리는 혁신기술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해킹 불가’지만 암호화폐 거래는 ‘해킹 타깃’이 되는 이중적 문제를 안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드론이나 자율주행 등에 널리 활용되는 인공지능(AI)에 비하면 블록체인 기술과 적용은 아직 진화 중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블록체인 혁신이 암호화폐의 논란에 오히려 묻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블록체인 육성과 암호화폐 발전의 시너지는 미해결 과제인 셈이다.
규제의 범위와 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적극적인 신규 코인 상장(ICO)을 통해 암호화폐 허브 국가를 선언한 스위스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규제 강화가 글로벌 추세다. 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는 정부의 책임이며 거래실명제 도입 등 당국의 규제 노력은 탓할 일이 아니다. 다단계 사기와 그림자 금융의 폐해가 큰 중국은 암호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초강수를 뒀다. 미국은 2013년 ‘자금세탁방지법’의 규제감시 대상에 가상통화를 포함했고 일본도 2014년 ‘암호화폐법’ 제정을 통해 철저한 관리와 거래수익에 대한 과세를 단행하고 있다.
다음달 19∼20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는 암호화폐 미래의 분수령이 될 강력한 규제 방안이 나올 전망이다. 암호통화 거래의 익명성과 용이성으로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어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경착륙을 막고 역동적 기술혁신 촉진과 건강한 투자생태계 조성을 위해 이해관계자 모두의 협력이 절실하다. 통상마찰, 가계부채와 금리 인상 등 시장 불안 요인들이 잠복해 있는 현 국내 경제 상황 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