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이자람 "1인 5역 진땀 뺐지만...연출도 해볼만하네요"

창극 '소녀가' 무대 올리는 이자람

창극단 '신창극시리즈' 첫 작품

연출·극본·음악감독 등 도맡아

佛구전동화 '빨간망토'서 모티브

영리하게 욕망 이루는 아이 그려

어린이 관객들 많이 와줬으면...




모처럼만의 이자람표 공연이다. 국립창극단이 올해 첫선을 보이는 기획 ‘신창극시리즈’의 첫 작품 ‘소녀가’는 이자람이 연출·극본·작창·작곡·음악감독까지 1인 5역을 맡아 그야말로 자기를 벼리고 녹여낸 작품이다. 연출은 첫 도전이고 아직까진 “진땀 빼고” 있지만 곧 있으면 “연출도 해볼만하다는 결론에 이를 것 같”단다. 잘하는 걸 하면서 즐기니 이 보다 복받은 재주꾼이 어디 있을까. 소리꾼, 배우, 밴드 보컬, 작창가 등 그리 많은 타이틀을 갖고도 연출 타이틀까지 하나 더 보태게 된 이자람을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이자람으로 볼작시면 창작 판소리극 ‘사천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등으로 그 이름 석자가 어디에도 포섭될 수 없는 장르요, 국악의 미래로 꼽히는 인물이다. “1년 전 신창극시리즈의 첫 주자가 돼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짧은 기간 창극화가 가능한 동화에서 해법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90권 가까이 봤는데도 와닿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다 누군가가 얘기해준 프랑스 작가 장-자크 프디다의 그림책 ‘빨간 망토 혹은 양철캔을 쓴 소녀’(2010)를 떠올렸어요. 책을 찾아보곤 무릎을 탁 쳤죠.”


호기심 많은 빨간 망토 소녀가 늑대의 꾐에 넘어가 위험에 빠진다는 프랑스 구전동화 빨간 망토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결말을 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교훈을 얻을 법하다. ‘함부로 호기심을 갖지 말자.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건 위험하다.’ 이런 결론은 본능대로 사는 이자람에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프디다의 책을 보고 이자람이 유레카를 외친 이유다. 늑대가 아닌 소녀의 시각에서 비틀어 쓴 이자람의 손에서 태어난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가보지 않은 길로 갈 거야. 재미있어 보이는 길로 갈 거야.’

“제목을 소녀가라고 짓긴 했지만 극을 보는 사람들이 소녀의 성별에 선입견을 갖지 않게 풀어낼 거예요. 소녀든 소년이든 자기 욕망을 잘 알고 영리하게 성취할 줄 아는 아이를 그리고 싶어요.” 자신이 입고 있는 철로 만든 드레스와 신발을 벗어야만 꿈에도 그리던 숲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철옷을 부숴버린 소녀, 빨간망토를 벗고 침대에 들어오도록 소녀를 속이는 늑대를 오히려 골탕먹이는 소녀 등 곳곳에서 드러나는 메타포는 한편으로는 성적이고 여성의 욕망에 대한 선입견을 비튼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창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을만하다. 그러나 이자람은 “그 어떤 타이틀도 붙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공연의 감상은 철저히 관객 몫이죠. 공연이나 영화 보러 갈때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이라고 연출이나 감독이 규정해버리면 저는 보기 싫어지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을 섹슈얼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재미있는 동화일 수 있어요. 관객의 경험에 달린거죠. 저는 그저 비어있는 부분을 그때그때 다르게 채워주는 것뿐이에요.”


한 사람의 소리꾼이 무대에 올라 다양한 인물을 노래하는 게 판소리요 이를 모태로 다수의 배우가 창을 하며 연기하는 식으로 발전한 것이 창극인데 본격 창극 탐구에 나선 이자람은 오히려 한발 뒷걸음 쳐 원형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도를 했다. 이른바 한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모노창극. 이자람의 간택을 받은 배우는 국립창극단 단원인 이소연이다. 올 초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을 정도로 공연계에서 주목받는 배우다. 이자람과 이소연 모두 소리꾼 송순섭을 사사했고 서편제의 송화로 함께 캐스팅되기도 한 터라 인연이 있었다. 특히 이자람은 지난해 ‘흥보씨’ 초연 당시 흥보 마누라 역을 맡았던 이소연을 일찌감치 점찍어뒀다고 한다. 문제는 출연 제안을 단숨에 받아들인 이소연도 대본을 보기 전까진 모노창극인지 몰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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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소녀가를 쓸 때부터 이소연을 생각하며 썼어요. 이소연의 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거죠.” 기나긴 대본 수정 작업을 거쳐 순도 100퍼센트 이자람이 담겼던 소녀는 이소연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공연이 열흘도 남지 않은 지금도 이자람은 이소연표 소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소연 집중 탐구 기간’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은 매일 오전 10시 국립극장에서 만나 요가로 몸을 풀고 오후 6시까지 꼬박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소연 외에도 작품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의 면면도 하나같이 화려하다. 고수이자 다양한 타악 연주로 음악적 효과를 만들 연주자는 제17회 박동진판소리명창·명고대회 고법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준형이다. 윤도현밴드·크라잉넛의 베테랑 키보디스트로 고경천도 신시사이저 연주자로 합류한다. “흥보씨 음악감독일 때는 창극이라는 범주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지만 지금은 뭐든 해봐도 된다는 자유로움을 느껴요. 흥보씨에서 보여준 음악의 신선함은 소녀가의 절반도 안될 걸요.” 어디 이뿐인가. 스토리 해석을 돕는 드라마트루그는 박지혜 양손프로젝트 연출, 무대는 여신동, 움직임은 권령은 등 공연계의 블루칩이 다 모였다. 창극의 내일을 모색해보는 국립창극단의 새?기획 ‘신창극시리즈’의 문을 열게 됐으니 이자람 나름대로 창극의 방향성은 정립해봤을 법도 하다. 그러나 대답은 ‘모르올시다’. 그저 한 명의 이야기꾼이 등장하는 모노드라마 형식도 창극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게 “재미있을 뿐”이다. “창극의 미래 그런거 전 몰라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때그때 할 뿐이에요. 전 판소리 하고 싶을땐 판소리하고 밴드활동하고 싶을땐 밴드 활동을 하죠. 어쩔땐 이런 기회가 분에 넘친다는 생각도 해요.”

올해는 모처럼 쉬어가는 해다. 지난해 안식년이라고 부르짖고도 흥보씨 음악감독 겸 작창을 맡았고 뮤지컬 서편제 송화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 ‘20세기건담기’ 등 다양한 작품에 쉴새 없이 이름을 올렸던 이자람이 올해 소녀가 외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단다. 여름에는 유럽에서 모처럼 쉬고 브라질에 판소리 워크숍을 다녀오는 정도의 계획만 타진중이다.

브레히트의 희곡을 창작 판소리극으로 재탄생시킨 ‘사천가’와 ‘억척가’, 주요섭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한 판소리 단편선 ‘추물-살인’,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품을 판소리화한 ‘이방인의 노래’ 등으로 매진행렬을 이어갔듯 이번 이자람표 공연도 매진이다. 이자람은 “어린이 관객들이 공연을 많이 봐줬으면 한다”며 “나 역시 어린시절 이런 공연을 봤다면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달 28일부터 내달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사진제공=국립창극단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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