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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천의 경매이야기] '전두환 소장품' 이력이 관심 불러..'농원' 추정가 2배에 팔려

■ 흑역사도 프리미엄

檢이 압류한 미술품 643점 중

상당수 첫 거래 불구 '완판'

낙찰총액도 무려 73억 달해

침체된 경매시장에 단비 작용

국내미술 발전 기여 '아이러니'

지난 2013년 말부터 2014년 3월까지 진행된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경매의 한 장면. /사진제공=케이옥션지난 2013년 말부터 2014년 3월까지 진행된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경매의 한 장면. /사진제공=케이옥션




경매회사 입사 9년차, 돌이켜보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경매들이 있다. 국내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것이 3번 있었고, 자선경매가 아님에도 출품된 모든 작품이 팔려 ‘낙찰률 100%’를 달성한 적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술품 경매’라는 분야를 전국민에게 강렬하게 알리게 된 계기는 지난 2013년 12월에 열린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경매’였다. 소위 ‘전두환 미술품 경매’라 불린 바로 그 경매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 환수를 위해 검찰이 압류한 미술품 649점은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이 각각 나누어 매각하기로 결정됐다. 이 중 케이옥션이 맡은 미술품은 총 374점이었다. 위작으로 판명된 작품 6점과 경매 진행 중 서울옥션에서 유찰돼 케이옥션이 인수한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 위작으로 판명난 작품은 폐기됐고, 나머지 368점은 모두 경매에 부쳐졌다. 양 사 경매에 오른 총 643점의 작품이 모두 판매됐고 두 회사의 합산 낙찰총액은 약 73억원에 달했다.

2013년 연말부터 3개월 간 이어진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경매는 케이옥션이 먼저 시작했다. 첫 경매 열리던 2013년 12월 11일, 케이옥션은 인수한 작품 중 80점을 경매에 올렸다. 김환기, 이응노, 이대원, 변종하, 권옥연, 김종학, 오치균 등 국내 주요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육근병, 구본창, 이석주, 권여현, 주태석 등 ‘아르비방’ 시리즈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류인, 노상규, 박종배의 조각 작품도 위용을 뽐냈으며 전두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글씨도 들어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거실에 걸려있던 이대원 화백의 ‘농원’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근황 보도 등을 통해 외부에 노출되기도 했다. /서울경제DB전두환 전 대통령의 거실에 걸려있던 이대원 화백의 ‘농원’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근황 보도 등을 통해 외부에 노출되기도 했다. /서울경제DB


경매사로서, 사실 첫 경매 결과가 이렇게 성공적일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경매를 위해 엄선된 80점의 작품 가운데 시장에서 거래가 잘 되는 작품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경매에서 거래된 적 없는 작품들이었다. 전문가적 감식안으로 알아보는 미술사적 가치는 있을지언정 아직 본격적인 시장형성이 안 된 작가의 작품들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는 1991년부터 시공사 대표를 맡으며 당시 30~40대 실력 있는 중견작가들의 화집을 출간했다. 프랑스어로 ‘살아있는 미술’이라는 뜻의 ‘아르비방’ 시리즈였는데, 이는 당시 국내의 어떤 대형 출판사도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대중적 수요가 많지 않은 화집을 연이어 내놓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미술계에선 신선한 바람을, 작가들에게는 적극적인 창작의지를 고취하는 영향을 준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매를 위해 압수한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에는 이 시리즈에 포함된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섞여 있었다.


예상을 깨고 경매결과는 낙찰률 100%를 달성했다. 간혹 전직 대통령의 글씨나소장품이 출품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통령 집안이 소장했던 미술품이 대거 경매에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소장품이었다는 사실은 전국민의 공분을 산 비자금, 부끄러운 역사가 담겨있는 컬렉션이라는 불리한 조건일 줄 알았건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미엄으로 작용했다. 오히려 노이즈마케팅처럼 대중들의 관심과 발길을 자극했다. 게다가 구입 자금 출처나 과정과는 별개로 작품의 소장이력(provenance)은 가격 형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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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1921~2005)의 ‘농원’은 추정가 3억~4억원에 경매에 나와 시작가의 2배 이상인 6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서울경제DB이대원(1921~2005)의 ‘농원’은 추정가 3억~4억원에 경매에 나와 시작가의 2배 이상인 6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서울경제DB


전두환 소장 미술품 중 가장 높은 가격에 판매된 작품은 전 전 대통령 거실에 걸려 있던 이대원의 1987년작 ‘농원’이었다. 120호짜리 대작으로 추정가 3억에서 4억원에 출품돼 치열한 경합 끝에 6억6,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는 시장에서 거래되던 평균 가격보다 훨씬 높게 판매된 것인데 대통령 집안의 소장품이라는 사실에 웃돈이 얹혔다. 이 때 출품된 많은 작품들이 기존 시장가격보다 높게 팔리는 기록을 세웠고 경매를 계기로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된 작품들도 생겨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몇 년 간 내리막길에서 침체돼 있던 미술품 경매시장에 전두환 미술품은 오랜 가뭄 끝의 단비 같았다. 많은 대중들의 관심이 쏠렸고 매체에서도 앞 다투어 소개했다. 다행히도 비자금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보다는 전직 대통령 일가의 소장품이라는 호기심과 미술에 대한 애정과 상당한 안목을 통해 모인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국내 미술계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측면이 부각됐다.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경매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미술품 경매시장에는 새로운 큰손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곳이 예금보험공사다. 예보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저축은행들이 보유했던 미술품을 경매사를 통해 매각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미술시장에는 ‘예보컬럭션’이라는 말이 생겨나 시장 거래에 훈풍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더불어 미술품 경매가 개개인의 거래를 넘어 사회의 공적인 역할을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가 됐다.

경매날 아침이면 검정 색 수트를 말끔하게 차려 입고 가슴팍에 케이옥션 배지를 단다. 경매시작에 앞서 현장에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이할 때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왠지 모를 사명감도 느껴진다.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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