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망과 경험이 있는 분을 모시겠습니다.”
지난 22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을 논의했지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덕망과 경험 두 키워드를 모두 갖추고 동시에 재계와 중소기업계가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물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손경식 CJ 회장은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춘 적임자라는 평가다. 손 회장은 재계 오너가이면서 동시에 전문경영인이다. 1994년 이후 CJ그룹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고 지난해 5월 조카인 이재현 CJ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한 후에도 그룹 회장 자격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재계 오너가와 기업인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손 회장은 정부 및 정치권과의 가교역할 경험도 풍부하다. 2005~2013년까지 18~21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해 상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재계 원로다. 이 같은 경륜 덕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유명무실해지자 신임 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경제단체 특성상 회원들의 중지를 모으고 조율에 탁월한 만큼 적임자라는 평가였다.
경총 전형위원회가 내홍을 빠르게 수습하겠다는 의지도 손 회장 단독 추대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회장 선정을 위한 논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치권 개입 등 논란만 커질 것”이라며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손 회장이 여권 인사와 경총 대기업 회원사가 지지한다는 인물이라는 점은 부담이다. 특히 손 회장과 함께 거론 중인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상임부회장을 맡을 경우 경총마저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 전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노동연구원장을 맡아 현 정부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이 경총 회장을 수락하면 첫 일정은 이낙연 국무총리와의 만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일 경총 주최 전국최고경영자 연찬회에 참석한 이 총리와 당시 경총 회장이던 박병원 회장은 오는 28일 막걸리 회동을 약속한 상태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경총의 비판 목소리에 불편함을 내비친 후 9개월여 만에 경총이 정부와 교감할 기회인 것이다. 오는 27일 경총 총회에서 손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선임되면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경제단체장 경험이 있는 손 회장 측과 경총 전형위 위원들의 사전 교감이 있었던 만큼 무난하게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