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5일(현지 시간) 공개된 갤럭시S9은 ‘스마트폰 이후의 모바일 기기’와 관련한 삼성전자(005930) 수뇌부의 고민이 어느 때보다 많이 담긴 작품이다. 지난 2010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반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 출시 이후 생활방수, 엣지 디스플레이, 시선 및 동작 인식, 음성 인공지능(AI) 등 꾸준히 새로운 서비스를 내놨지만 이제는 더 이상의 혁신을 내놓기 어려울 정도로 스펙이 상향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갤럭시S9은 전작인 갤럭시S8과 같은 5.8인치 디스플레이에 전면화면 비율이 93%로 커진 것 외에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디자인 부문에서 시리즈별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 애플의 전략도 연상시키며 갤럭시S8의 디자인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방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승부수는 카메라다. 갤럭시S9은 전면에는 800만화소, 후면에는 1,200만화소 카메라를 각각 탑재했으며 6.2인치 대화면 모델인 ‘갤럭시S9+’는 갤럭시S 시리즈 최초로 듀얼카메라를 탑재하며 카메라 기능에 공을 들였다. 듀얼 카메라는 렌즈가 두 개이기 때문에 사진을 더욱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으며 삼성전자 제품 중에는 ‘갤럭시노트8’에 최초 탑재된 바 있다. 후면 카메라는 업계 최고 수준 밝기를 제공하는 F 1.5 렌즈와 F 2.4 렌즈의 ‘듀얼 조리개’와 광학식 손떨림 보정(OIS) 기능을 넣었으며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광학 줌 기능도 향상시켜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에 최적화된 제품이라는 평이 나온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은 이날 언팩 행사에서 “의미 있는 혁신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시작됐고 발전돼 왔다”며 “갤럭시 S9은 비주얼로 메시지와 감정을 공유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사용 경험을 제공하고 모든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진화가 눈에 띈다. 자체 개발한 3단 적층 이미지센서인 ‘아이소셀’을 탑재해 초당 960프레임 이상 촬영할 수 있는 ‘슈퍼슬로우모션’ 모드가 가장 호응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슈퍼슬로우모션을 활용하면 경주용 차나 롤러코스터와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도 또렷하게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다. 슈퍼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한 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루프’, 촬영한 영상을 반대로 재생하는 ‘리버스’, 특정 구간을 앞뒤로 재생하는 ‘스윙’ 등의 기능으로 그림(GIF) 파일을 만들어 지인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유할 수도 있다.
어두운 곳에서 촬영하더라도 피사체를 밝게 포착하는 저조도 촬영 기술 또한 활용도가 높을 전망이다. 늦은 밤 숲속이나 야외 캠핑장과 같은 어두운 장소에서도 저조도 촬영 기술을 통해 다양한 장면을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보인 3D 이모지(emoji) 기능은 향후 확대될 증강현실(AR) 시장까지 노린 승부수로 봐도 무방하다. 3D 이모지는 카메라에 잡힌 사용자 얼굴의 눈, 코, 입, 뺨, 이마 등 100개 이상 특징점을 인식해 3차원 캐릭터로 만들어 사용자 움직임을 따라 한다. 향후에는 해외 각지에 떨어진 사람들이 가상 공간에서 3D 이모지 기능을 활용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듯한 화면 연출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애플이 아이폰X 출시와 함께 선보인 ‘애니모지’에 비해 한 차원 진화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향후 애플과의 기술력 대결도 관전 포인트다.
카메라의 지능도 높아졌다. 이번에 탑재된 ‘빅스비 비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은 글자나 음식, 장소 등의 모드를 선택한 후 피사체에 카메라를 갖다 대면 사용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만의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인 AKG의 기술이 가미된 스테레오 스피커가 탑재되고 입체감 있는 소리를 제공하는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것도 눈에 띈다. 이번 갤럭시S9이 어느 때보다 엔터테인먼트 기능에 많이 신경을 썼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물인터넷 플랫폼(IoT)으로서의 역할도 강화한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의 IoT 기기를 스마트폰으로 제어 가능한 ‘스마트싱스’ 앱을 갤럭시S 시리즈 최초로 탑재했다. 가전기기와 자동차를 IoT로 아우르는 ‘커넥티드 라이프’ 전략을 구현해내기 위한 승부수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845(해외용)’와 삼성의 ‘엑시노스9810(국내 및 해외 일부용)’을 탑재했다. 기본 램(RAM)은 4GB이며 저장공간은 64GB, 128GB, 256GB 등 세 종류로 출시된다. 갤럭시S8에서 탑재한 AI 비서 ‘빅스비’는 왼쪽 부분에 그대로 자리하며 무선충전과 방수 및 방진, 삼성페이 등의 기능도 그대로 제공한다. 홍채 인식과 3D 얼굴 인식을 동시에 활용하는 ‘인텔리전트 스캔’도 탑재돼 스마트폰의 보안 기능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색상은 기존 미드나이트 블랙, 티타늄 그레이, 코랄 블루에 라일락 퍼플이 추가돼 총 4개 색상으로 출시된다.
갤럭시S9의 국내 사전 예약은 오는 28일부터 진행되며 공식 출시일은 다음 달 16일이다. 글로벌 시장에도 순차적으로 출시해 글로벌 스마트폰 1위 사업자로의 위상을 굳건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출고가는 100만원 내외로 역대 갤럭시S 시리즈 중 가장 높다.
한편 이날 갤럭시S9 공개 행사장에는 화웨이, ZTE, 레노버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또 소니모바일과 HMD글로벌 등 이번 MWC에서 신작을 공개하는 회사 관계자들도 참석해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국내 이통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또 어떤 혁신을 선보일 지에 대한 높은 관심이 이날 행사 열기에서도 알 수 있다”며 “이번 MWC의 주인공은 확실히 갤럭시S9이 차지한 듯하다”고 밝혔다./바르셀로나=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