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다주택·고가주택자 겨냥 보유세 인상 자칫 서민 복지 훼손 우려"

원희룡 제주도지사 지방 과세자주권 긴급토론회 개최, "공평과세 중요하나 장기 노후주택 거주 서민 피해 대책 세워야"

정수연 제주대 교수 "노후주택 공시가 급등→재산세 상승→주거급여 탈락→생계급여 탈락→의료급여 탈락" 악순환 지적

전문가들, "과세 공정성과 형평성 위해 공시지가 산정 합리화" "현장 잘 아는 지방에 일정부분 과세자주권 이양" 강조

김현아 국회의원 "공시가 결정하는 과표인상 국회 패싱(Passing)으로 가능, 시행착오 줄이기 위해 제도 개선" 목소리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24일 제주시 한 호텔에서 ‘지자체 과세자주권 강화’ 토론회를 열고 지방분권과 현실에 맞는 과세 자주권을 강조하고 있다.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24일 제주시 한 호텔에서 ‘지자체 과세자주권 강화’ 토론회를 열고 지방분권과 현실에 맞는 과세 자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1. 대지면적 122㎡(37평), 건물면적 50㎡(15평) 규모의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제주 시골집에 거주하는 김영미(78·가명)씨. 최근 3년새 40년 이상 노후주택인 그의 집 주택공시가격이 급등했다. 2013년(0.2%)를 제외하고 20년부터 2014년까지 마이너스 상승률이었으나 2015년 2.7%, 2016년 10.4%, 2017년 22%나 뛴 것이다. 결국 그는 소득이 턱없이 낮음에도 생계급여에서도 탈락하고 주거급여(리모델링비)도 지원받을 수 없게 됐다.

#1 노후주택#1 노후주택


#2. 역시 40년 이상 노후 슬레이트 주택에서 사는 김수현(81·가명)씨. 그의 집도 공시지가가 2011년부터 매년 0.3% 안팎 상승하다가 2014년 4.8%, 2015년 9.0%, 2016년 33.8% 등 급등세를 기록했다. 소득은 낮지만 자산인정금액이 높아지며 그는 끝내 기초연금에서 탈락했다.




#2 노후주택#2 노후주택


이는 부동산 전문가인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제주특별자치도의 협조를 얻어 조사한 내용이다.

문제는 이처럼 저소득층 노후주택의 공시가격이 급등하면 재산세 상승→주거급여 탈락→생계급여 탈락→의료급여 탈락(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악순환이 도미노처럼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가 다주택자와 고가주택자를 겨냥해 보유세 인상 추진에 나선 가운데, 제주와 세종시 등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일부 투기바람이 분 곳을 중심으로 노후주택 공시가격이 급등해 이같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제주도의 공동주택 공시가는 2015년부터 3년간 10%, 25%, 20%나 인상됐는데 복지수혜계층에 미치는 악영향이 만만치 않다”며 “현재 공시가격 산정방법이 부정확해 덜 가진 사람이 더 내고 더 가진 사람이 덜 내는 구조라 현장을 잘 아는 지방에 일정부분 과세자주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 등 다주택자의 투기수요를 진정시키기 위한 보유세 강화가 자칫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며 복지도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전국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 추이전국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 추이


제주도 공동주택 주택공시가 변화 추이제주도 공동주택 주택공시가 변화 추이


실제 서울특별시 용역보고서(2015년 서울시 개별주택 공시가격의 합리적 개선방안, 임재만·이재우·정수연)에 따르면 부동산 공시가격이 복지(8개), 부담금(3개), 행정목적(17개), 조세(6개), 부동산 평가(19개) 등 50여개의 공공목적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보유세 인상 과정에서 서민피해를 줄이기 위한 세심한 대책이 요구된다.


하지만 일정 권역에서 공시가격의 표본이 되는 표준주택가격을 산정할 때 감정평가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나서 오류가 많다는 게 정 교수의 분석이다. 실제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서 개별주택 산정의 기초자료인 비준표를 보면 제주도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 철도나 지상전철이 있거나 현지에는 없는 용도지역이 나타나기도 한다. 저렴하고 소규모 주택일 수록 공시가격 상승률이 높은 반면 고가주택은 거래사례가 별로 없어 가격을 보수적으로 잡게 되는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정 교수는 “비준표의 데이터에 문제가 있어 서민 주택 인근에서 투기가 발생하면 그 가격이 바로 서민 재산세 인상으로 이어지는 공시가격에 산정된다”며 “산정은 감정평가와 달리 투기를 따지지 않고 인근에서 거래만 발생하면 과세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지역을 전담하는 과세감정평가사가 해당지역을 잘 알고 현지상황에 맞춰 비준표를 작성하나 우리는 지역사정을 잘 아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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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제주시 한 호텔에서 제주도와 제주연구원, 김현아 의원이 공동주최한 지방 자주과세권 강화 토론회에서 김동전(왼쪽부터) 제주연구원장,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정수연 제주대 교수,  원희룡 제주도지사, 오동훈 서울시립대 교수,   전동흔 세무법인 율촌 고문, 박상수 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고광본 서울경제신문 선임기자, 정태성 제주도 세정담당관이 함께 ‘얼쑤’를 외치고 있다.24일 제주시 한 호텔에서 제주도와 제주연구원, 김현아 의원이 공동주최한 지방 자주과세권 강화 토론회에서 김동전(왼쪽부터) 제주연구원장,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정수연 제주대 교수, 원희룡 제주도지사, 오동훈 서울시립대 교수, 전동흔 세무법인 율촌 고문, 박상수 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고광본 서울경제신문 선임기자, 정태성 제주도 세정담당관이 함께 ‘얼쑤’를 외치고 있다.


이와 관련,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제주연구원(원장 김동전)에 긴급의뢰, 24일 제주시 한 호텔에서 ‘중앙정부 주도 보유세 개편 무엇이 문제인가, 지방의 과세자율권 확보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원 지사는 이 자리에서 “중앙정부 주도로만 보유세 개편이 이뤄진다면 도민에게 큰 피해가 미칠 수 있어 지방의 과세자주권 확보가 필요하다”며 “제주만의 문제가 아닌만큼 다른 지역과 손잡고 국회 토론회 등 적극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겠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법령개선 건의 등 제도개선을 통해 제주도 등 지역실정에 맞는 과표시스템와 복지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토론회를 공동개최한 김현아 국회의원도 이 자리에서 “정부가 보유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데 세율 인상과 과표 현실화라는 방법이 있다”며 “공시가를 결정하는 과표 현실화는 국회 패싱(Passing)으로도 가능한데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동의를 표시했다.

주제발표한 정 교수는 공시가격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저가주택의 보유세만 크게 증가하고 고가주택의 보유세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2016년과 2017년 제주도의 주택공시가격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제주시의 2,000만 원 미만 주택은 공시가격이 21.1%, 3,000만~5,000만 원 이하 주택은 21.4% 상승한 반면 7억~8억 원 주택은 12.5% 상승에 그쳐 상대저으로 서민 주택 세금이 더 많이 상승했다는 것. 정 교수는 “보유세 인상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있는 사람은 더 내고 없는 사람은 덜 내는 과세 형평성과 조세 정의가 필요하다”며 “복지확대를 위해 보유세를 올리는 것은 찬성하나 공시가격의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보유세 강화가 복지계층을 더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꼬집었다. 중앙정부 주도의 보유세 개혁이 지역현실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고 비준표의 신뢰성이 크게 의심되는 만큼 과표를 직접 지자체가 작성하는 과세자주권의 실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24일 제주시 한 호텔에서 제주도와 제주연구원, 김현아 의원이 공동주최한 지방 자주과세권 강화 토론회에서 김현아 국회의원(앞줄 오른쪽 두번째)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토론회 발제를 듣고 있다.24일 제주시 한 호텔에서 제주도와 제주연구원, 김현아 의원이 공동주최한 지방 자주과세권 강화 토론회에서 김현아 국회의원(앞줄 오른쪽 두번째)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토론회 발제를 듣고 있다.


토론에 나선 전동흔 세무법인 율촌 고문(박사, 전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은 “부동산 공시가격 체계는 중앙정부는 평가가격 등 기준을 제시하고 개별부동산 가격 결정권은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뒷받침하고 공평과세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현장을 잘 아는 지자체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상수 지방세연구원 세제연구실 과표연구센터장도 “중앙정부가 공시가격 산정과 결정을 하는 데 앞으로는 표준지 수의 결정, 비준표 작성 등의 권한은 지방으로 이양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적정성을 확증하지 못한 실거래자료만 활용하는 비전문가에 의한 주택공시가격 산정은 전문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며 “과세자주권 강화라는 큰 그림은 찬성하나 지방 불균형 해소방안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광본 서울경제 선임기자는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부세)가 미국 1.5%, 일본 1.2%에 비해 우리는 0.15%라 인상이 맞긴 하다”면서도 “다주택자와 고가주택자를 겨냥한 보유세 인상이 장기보유 저소득 서민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는 공정성 차원에서 바로잡고 서민 주거복지에 대한 빅데이터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태성 제주도 세정담당관은 “지방에서 이같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려고 해도 실질적으로 권한이 많지 않아 애로가 크다”고 털어놨다.

/제주=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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