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직원을 보복성 인사 조치한 르노삼성자동차에게 위법성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오히려 피해자를 징계한 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다. 여기에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이 오는 5월 시행되면서 기업들은 직장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과태료와 형사책임(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더욱 무거운 책임을 안게 됐다.
법무법인 광장은 지난해 하반기 주요 노동사건 판례를 돌아보는 세미나를 지난 22일 열었다. 최근 성폭력 사건에 대한 각계 폭로와 반성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법원도 처벌을 강화하면서 기업들의 대응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진창수 광장 노동그룹 변호사는 “요즘 법원은 가능한 모든 법령과 법리를 동원해 성폭력 책임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며 “가해자는 물론 기업들도 성폭력 예방과 해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금과 관련해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판결도 소개됐다. 월 최저임금 계산의 토대가 되는 월 소정근로시간을 174시간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2007년에도 같은 판단을 내렸지만 지난 해 판결은 월 209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한 고용노동부 고시(2016년)가 나온 이후에도 사법부 판단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법원 기준으로는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에 174시간을 곱한 131만220원이 월 최저임금이지만 고용부 셈법으로는 157만3,770원이다. 최저임금선에 해당하는 영세 사업장들은 대법원 판단이 한결 부담이 덜한 셈이다.
대법원은 또 금호타이어 사업장에서 원자재 하역, 불량품 처리, 포장 등 업무에 대해 위탁계약을 맺고 2년간 이상 일한 사내 협력사 파견 근로자에 대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며 원청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현대자동차의 유사한 노동 사건에서도 불법 파견임을 인정했다. 금호타이어 사례는 불법 파견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진 변호사는 “원청업체와 협력사 간 계약 운영방식이 바뀌었더라도 종전부터 근무해 계속 일하는 근로자가 있다면 여전히 불법 파견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는 기업과 노조 간 단체 협약 과정에서 소수노조의 절차참여권을 인정한 서울고법의 2심 판결도 나왔다. 기업 내 소수노조 조합원에게도 단체협약 확정을 위한 총회·결의절차에 참여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교섭대표노조의 공정대표의무가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또 대전고법은 회사가 노조에 승용차 렌트비, 유류지원비, 복사기·인쇄기·팩스·인터넷 사용료, 자판기 임대수익 등을 지원한 것은 부당노동 행위에 해당해 노조가 이득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이 ‘부당한 노조 운영비 지원’ 범위에 대해 폭넓게 인정하는 만큼 기업들로선 유의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밖에 대법원은 경력을 위조한 근로자와 회사의 근로계약 취소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경력 사칭 근로자라 하더라도 기업에 노동을 제공한 기간은 실제 근로시간으로 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또 아파트 경비원의 야간휴게 시간 중 순찰업무 시간뿐 아니라 나머지 시간도 초과 근로에 해당한다는 판결도 하반기 주요 노동 판례로 꼽힌다. 진 변호사는 “올해 노동계의 핵심 쟁점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근로시간 단축과 현재 2심이 진행 중인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사건이 될 듯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