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조원 규모의 서울시 금고지기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가 다음달로 미뤄졌다. 당초 예상보다 두 달 가까이 늦어지는 배경에는 은행 간 과열경쟁이 시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6일 금융권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금고 입찰공고가 처음 계획과는 달리 오는 3월로 연기됐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법적인 검토를 포함해 복수금고 체계와 단수금고 체계의 장단점을 살펴보는 등 여러 절차상 시간이 걸려 이달 중에는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에는 1월에 입찰공고를 낸 바 있어 예년보다 두 달 가까이 지체되는 셈이다.
서울시에서는 ‘절차상’이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입찰공고를 할 때 단수금고 또는 복수금고까지 구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시금고는 우리은행이 104년째 맡아왔는데 타 은행에서는 최소한 복수금고 구조를 만들어 투명성과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산장애나 파업 등에 대한 위험 분산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로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서울시만이 단수금고를 택하고 있는 까닭이다. 다른 지자체는 일반회계를 맡는 1금고와 특별회계ㆍ기금을 담당하는 2금고로 나눠 자금을 관리한다. 부산시의 경우 부산은행과 국민은행·농협은행 등 3개 은행에 금고지기를 맡길 정도다. 서울시는 우리은행이 독주 체제를 갖고 있는 만큼 타 은행들은 최소 조 단위인 2금고라도 가져와 기회로 만들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1금고건 2금고건 우리은행의 독주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은 서울시만의 독자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세입·세출·과오납환급’까지 전 과정을 온라인 처리하고 있으며 단수 체제로 운영해야 데이터 및 자금전용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해킹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같은 사고도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이자 장사로 돈을 번다는 비판이 커지고 가계대출에 대한 자본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관 영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시 금고를 맡게 되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서울시의 예산·기금을 관리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이점이 커 은행장이 직접 나서 총력전을 펼칠 태세다. 올해 서울시 예산은 31조8,000억원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출연금만 클 뿐 수익성에는 큰 도움이 안 돼 상징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은행은 지난 4년간 시 금고를 맡으며 1,300억원의 출연금을 냈다. 이번에는 2,000억원은 돼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항상 입찰 후에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입찰공고에서 설명회, 사업자 선정까지 기간을 감안하면 더 지체됐을 경우 6월 선거 전 마무리가 안 될 수도 있다”며 “수성하려는 손태승 우리은행장과 차지하려는 허인 KB국민은행장, 위성호 신한은행장의 쟁탈전이 심화되면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