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삼성 美에 TV 공장] '美 호혜세 확대' 미리 막기...글로벌 생산시스템 재편 의지도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주장했던 통상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당시 국내 철강사의 한 전략 담당 임원은 “한국산 철강 수입을 제재하면 한국 철강을 쓰는 미국 산업계 피해가 엄청나다. 선거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단언했다. 정부도 트럼프의 엄포를 허풍 취급하며 대응책 마련에 손 놓고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냉전 시기 사문화된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꺼내 현실이 됐고 이는 한국 철강 업계를 옥죄고 있다. 삼성·LG 등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까지 발동했다. 삼성전자(005930)가 미국 TV 생산라인 건설 검토에 착수한 것도 이런 심상찮은 분위기를 타고 제재의 타깃이 TV·반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미국 등 북미 시장은 삼성전자 연간 매출의 3분의1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라는 점에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심상찮은 美 분위기…통상압박 선제 대응 나선 삼성=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TV 완성품을 만들지 않고 대부분을 수입해온다”면서 “이는 불공정하다. 상호호혜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 세이프가드가 발동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철강에는 초강력 제재가 예고돼 있다. 호혜세는 ‘미국산 제품에 세금을 매기는 만큼 자신들도 수입 제품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사실상의 무역 보복 조치다. 호혜세 등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한국 TV에 무역 제재를 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의 주장이 허언이 아님이 세탁기와 철강 사례로 확인됐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은 그들(미국)이 우려하는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호혜세 부과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에서 탈퇴하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도 부담이다. 그는 지난 24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나프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거론하며 “나쁜 무역 협상”이라고 지칭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국경 접경 지역에 있는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에서 TV를 생산해 미국 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양국은 나프타에 따라 무관세가 적용된다. 하지만 나프타 탈퇴가 실현되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제품에 35% 관세가 붙는다.


한국산 반도체를 겨냥한 미국 정부의 특허 조사를 의식한 차원도 있다. 세탁기에 이어 TV 공장 투자까지 단행해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스탠스를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현재 삼성전자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관련 특허가 자국 반도체 업체인 비트마이크로의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미국 반도체 패키징 업체인 테세라도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연 매출 3분의1 美 시장 놓칠 수 없어”=북미는 전 세계 가전업체들이 내놓는 프리미엄 제품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각축장이다. 그중에서도 미국 소비자들은 가격과 성능을 깐깐히 따져보는 합리적 소비 성향이 강하다. 미국 시장에서 1등 한다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된다. 가전을 포함한 삼성전자의 전체 연간 매출 가운데 34%(2016년 기준)가 북미 시장에서 나왔다.

삼성전자로서는 이같이 중요한 미국 시장에서 세탁기에 이어 TV에까지 무역 보복 조치가 내려지는 것을 바라만 볼 수 없는 입장이다. TV 사업은 중국 업체들의 약진으로 점유율이 IHS마킷 기준 2017년 36.6%로 전년보다 3%포인트가량 줄었다.

최대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TV에 호혜세가 붙고 미국의 나프타 탈퇴로 관세가 부과되면 이는 가격 경쟁력 악화로 직결된다. 한국산 세탁기 무역 제재가 현실화하자 삼성전자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가전 공장을 조기 가동해 관세 폭탄 피해 최소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글로벌 생산 시스템을 효율성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미국 몇몇 주(州)정부는 삼성전자 공장 유치를 위해 각종 세금 혜택과 고급 인력 지원 혜택 등의 당근책을 제시하며 유치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동남아 생산 체계를 베트남 중심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한재영·신희철기자 jyhan@sedaily.com

한재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