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결국 연임됐다. 글로벌 무역분쟁, 한미 기준금리 역전 임박, 더딘 구조조정 등의 대내외 악재와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변화’ 보다는 ‘안정’을 택한 인사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청와대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주열 현 한국은행 총재의 연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은 총재의 연임은 2대(1951년~1956년) 김유택 총재, 11대(1970년~1978년) 김성환 총재 이후 세번째다. 1998년 한은법 개정으로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자리를 한은 총재가 맡은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 총재는 연임 발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역할의 중요성이 인정받은 것”이라며 “우리 경제가 처해있는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은 내에서도 손꼽히는 통화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1977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통 한은맨이다. 지난해 11월 금통위에서 6년 5개월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해 ‘저금리’ 시대를 끝냈고 중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하고 캐나다·스위스와 새로 계약을 체결해 외환안전망을 강화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한국판 양적 완화를 명분으로 국책은행에 출자하라는 압박을 막아내면서 ‘한은의 독립성’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과 시장은 연임의 배경으로 크게 2가지를 꼽는다. 먼저 한국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와 통상 압박 등 대외적 위기가 몰아치면서 경제불안정성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최근 들어 연임 가능성이 부상한 것도 대외위기가 커지면서다. 좀 더 정교하고 안정적인 통화정책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국내의 상황도 좋지 않다. 국내 경기는 아직 수출 주도 성장세의 온기가 확산하지 않고 있으며 GM사태 등으로 냉기가 돌고 있다. 특히 현 정부의 최대 과제인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의 찰떡 궁합도 필요하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김 부총리와 이 총재는 통화와 재정정책의 정교한 믹스를 위해 그 어떤 수장들보다 훨씬 호흡을 잘 맞춰 왔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문회 과정에서 자칫 총재 내정자가 낙마해 지방선거에 타격을 입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4년 전에도 검증을 쉽게 마친 만큼 이번 청문회도 큰 오점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정가의 평가다.
연임에 성공한 이 총재의 앞에는 과제도 많다. 가장 큰 것은 한미금리 역전이다. 오는 20∼21일(현지시간)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정책금리를 연 1.25∼1.50%에서 연 1.50∼1.75%로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경우 한미금리는 2007년 8월 이후 10년 7개월 만에 역전한다. 여기에다 미국의 금리 인상 횟수가 3회에서 4회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유력하다. 국내 경제 회복의 불씨를 지키면서도 자금 유출 우려를 줄이는 정교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미국의 거센 통상압박, GM의 국내 공장 철수 등 국내 경기 회복세의 발목을 잡을 요인들도 산적해 있다. 1,450조원대로 불어난 가계부채 증가세를 어떻게 잡느냐도 새 임기를 맞게 될 이 총재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와 함께 2%대 중후반대로 하락한 잠재 성장률을 어떻게 상승 반전시킬 수 있을지도 이 총재의 고민거리가 될 전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 총재에게는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대외변수와 가계부채 등 대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며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 무난한 인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능현·빈난새 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