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이 수입 철강에 대한 25%의 관세 폭탄을 특정 철강 제품에 대해 면제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고강도 무역규제의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트럼프 정부는 일부 국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철강 수출국에 일괄적으로 관세를 부과한다는 원칙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유무역을 당론으로 채택한 공화당이 공정거래나 캐나다 등 동맹국에 대한 관세 면제를 계속 촉구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주 말쯤 내릴 최종 결정에 변화를 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4일(현지시간)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일 발표된 수입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과 관련해 “미국 제조업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특정 제품은 면제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내 조달이 어려운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에 한해 자국 제조업체들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지는 않겠지만 일본 철강 기업이 생산한 고강도 경량 강재 등 일부 제품은 예외로 인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나바로 국장은 이어 “관세 면제와 특정 국가 제외는 다르다”면서 “특정 사안에는 면제 절차를 적용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국가별 제외는 없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정책을 주도하는 그는 “여러 나라를 면제하기 시작하면 다른 모두의 관세를 올려야 하고 만약 한 나라를 면제하면 다른 나라도 면제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이날 ABC방송 인터뷰에서 “결정은 분명히 트럼프 대통령의 것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광범위한 빗자루질을 말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특정 국가의 면제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무역 규제가 확정되면 특정 국가를 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로스 장관은 이어 “대통령이 여러 나라의 대통령·장관들과 이야기했으며 그들은 나와도 이야기했다”며 “지켜보자. 결정은 대통령이 내린다”고 밝혀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백악관은 구체적 철강·알루미늄 수입 규제안을 이번주 말 또는 늦어도 다음주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국내외의 거센 비난과 제재 완화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트위터에 “거의 모든 무역 거래에서 우리가 지고 있다”면서 “우리의 친구와 적들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을 이용했고 우리의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은 죽었다. 미안하지만 이제 변화할 시간”이라며 철강 관세 부과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압박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유럽연합(EU)·캐나다·한국·일본 등 주요 교역국과의 협의를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자주 쓰는 ‘벼랑 끝 협상’ 전술 중 하나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폐기 직전까지 갔다가 캐나다·멕시코 등 당사국과 미 의회의 적극적 로비에 못 이기는 척 재협상을 결정한 바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관심사인 철강 규제의 강도와 대상 등이 사실상 대통령 개인의 뜻에 달린 만큼 워싱턴에서는 주요 교역 상대국들이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공화당 지도부도 백악관에 철강 수입 규제 완화를 계속 설득하고 있다. 공화당의 케빈 브래디 하원 세입위원장은 이날 “나프타 재협상을 진행 중인 캐나다와 멕시코뿐 아니라 공정하게 거래되는 철강·알루미늄도 추가 관세 부과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