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제정된 프랑스 민법전(Code Civils des Francais·일명 나폴레옹 법전)에 대한 나폴레옹 1세의 자긍심은 대단했다. “나의 명예는 전승보다 법전에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인격의 평등, 소유권의 절대성, 계약자유의 원칙 등을 담은 이 법전은 이후 각국의 민법에 영향을 미치며 민주주의 법 체계의 바이블로 불리고 있다. 특히 유려한 문장 때문에 대문호 스탕달은 단 하루도 나폴레옹 법전을 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에 이르러서야 민법이 제정됐다. 1948년 헌법이 공포된 지 12년이나 지나서야 사법(私法) 관계를 규정하는 법 체계가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긴 유럽과 달리 당시 국내에는 민법에 대한 학문적 체계조차 없다 보니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를 중심으로 사법부가 직접 일본의 민법전 체계를 빌려와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민법 체계는 1990년과 2005년 두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1990년에는 호주의 절대적 상속권한을 없애는 등 가족법의 대대적 개정이 이뤄졌다. 2005년에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호주제와 동성동본 결혼 금지 제도가 폐지됐다. 비로소 이때 이혼 후 6개월간 여성의 재혼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어졌다.
지난 58년 동안 크고 작은 민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제정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민법 조문의 용어들이다. 민법 조문에는 ‘궁박(窮迫)’ ‘가주소(假住所)’ 같은 일본식 표기나 ‘해태(懈怠)’ ‘최고(催告)’ 등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들이 수두룩하다. 무리한 한자 사용으로 어법에 맞지 않는 비문도 많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지난 2009년 당시 법무부가 만든 ‘민법개정위원회’의 검토 결과 전체 1,118개의 조문 중 용어와 문장 때문에 수정 필요성이 있는 조문이 무려 1,057개에 달했다고 밝혀졌을 정도다.
법무부가 민법 조문의 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기 위한 법 개정안을 마련해 최근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정이 그동안 멀고도 어려웠던 민법이 국민 앞으로 한 걸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두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