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시각] 구조조정 원칙대로 '메스' 잡아라

노희영 금융부 차장

노희영차장


금호타이어·STX조선·성동조선·한국GM…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모습을 지켜보니 20년 전 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대량 실직의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 떠오른다. 구조조정이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그때부터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기업의 부실 징후를 감지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인력 감축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곪을 대로 곪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순간이 돼서야 정부와 산업은행 등이 나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마저도 노조와 정치권의 반발에 부딪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추진방향’을 발표했지만 ‘금융 논리와 산업적 측면을 균형 있게 반영한다’는 애매모호한 방침으로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일각에서 산업적 측면을 고려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결정한다는 얘기이고 결국 다 살리겠다는 뜻 아니냐고 지적한다.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경영을 잘못한 사측이나 투쟁을 일삼던 노조에 책임을 묻는 이유다.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친 정부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에 집착하다 보니 기득권 철폐나 고통 분담 같은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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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조선과 성동조선·금호타이어는 모두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두 회생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대통령은 신년 초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했을 때부터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 한국GM의 경우 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진작에 독자경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제너럴모터스(GM) 미국 본사에서 정부에 자금 지원 요청을 하기 전까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손 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량 실업이 두렵다고 제 살을 깎는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작정 공적자금을 넣었다가는 다음 정권과 국민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넘어갈 수도 있다.

한국 경제는 지금 거센 외풍을 맞고 있다. 미국이 외국산 철강에 25%의 관세 부과를 선언하자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상징적 제품에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중국도 미국산 농산물 등을 겨냥하고 나섰다. 무역 강대국 간의 이 같은 무차별 보복전은 한국처럼 내수 규모가 작은 국가에 2차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럴수록 경제의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두렵다고 계속 방치하면 결국 병은 더 커지고 환자의 회생 가능성은 영영 사라진다. 이제라도 구조조정 원칙대로 부실기업을 수술대에 올려 메스를 대야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nevermind@sedaily.com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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