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48년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에 ‘장난감으로 가득 찬 슈퍼마켓’이라는 낯선 형태의 점포가 선보였다. 25세의 청년 찰스 P 래저러스가 만든 어린이를 위한 가게였다. 놀이공원에 버금가는 대형 매장과 저렴한 가격, 다양한 상품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베이비붐 열풍을 타고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래저러스는 10년 후 장난감을 뜻하는 ‘Toy’와 자신의 이름 ‘La Zarus’를 합해 2호 점포인 ‘토이저러스(ToysRus)’를 세웠다. 가게 이름도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알파벳 ‘R’를 일부러 뒤바꿔 Toys‘Я’Us로 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장난감업체인 토이저러스는 한때 세계 각국에 1,600개의 매장을 거느리면서 115억달러(약 13조원)의 매출을 자랑했다. 기린 캐릭터 ‘제프리’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으로 불렸고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토이저러스 매장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였다.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달리 특정 상품군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토이저러스 식의 카테고리 킬러는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혁신적인 신종 유통업태로 각광받았고 미국식 거대자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토이저러스는 1990년대에 미국발 통상전쟁의 중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일본 상륙을 시도하던 토이저러스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까지 공공연히 거론하며 유통시장 개방을 밀어붙였다. 당시 일본은 대형 매장의 진출을 엄격히 제한했던 대규모소매점포법(대점법) 규정이 있었지만 미국 정부의 거센 압력을 견디지 못해 결국 도쿄의 외곽지역에 토이저러스 매장을 허가해주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토이저러스가 지속적인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미국 내 모든 매장의 전면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아마존 같은 온라인 업체의 공세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우리의 혁신능력은 경쟁사에 비해 10년이나 뒤처졌다”며 반성했지만 만시지탄일 뿐이다. 신기술에 밀려 내일은 또 어떤 기업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