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자살률 높이는 '이상한 규제'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범의료자살예방연구회 회장·대한뇌전증학회 회장




우리나라는 한 해 1만4,000명, 하루 40명가량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0~30대 사망 원인의 1위, 40~50대 사망 원인의 2위가 자살이다. 특히 한 해 700만명이 자살 생각을 하고 이 가운데 30만명은 직접 시도까지 한다.

전 국민과 언론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칠 만도 한데 조용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자살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한 차례의 지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15년간 자살예방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부터 분석해야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미국의 자살률은 매우 높았다. 관련 논문들에 따르면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삼환계(TCA) 항우울제를 썼는데 치료는 제대로 안 되고 과량(過量) 복용 시 치사율이 매우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하지만 부작용이 매우 적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 계열 항우울제들이 나오면서 자살률이 급감했다. SSRI 항우울제는 미국의 일부 주에선 교육을 받은 간호사도 처방할 정도로 안전하다.

반면 자살률이 매우 낮았던 우리나라는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치솟았다. 우울증 치료율은 10%를 밑돌아 최저 수준이다. SSRI 항우울제가 들어와 사용이 늘던 2002년 3월 보건복지부에서 3%밖에 안 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외에는 SSRI 항우울제를 60일 이상 처방하지 못하게 한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고시한 영향이 크다.

우울증 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하는 과는 미국에서는 가정의학과, 일본에서는 내과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SSRI 항우울제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약물 난치성 우울증 환자(약 30%)들을 주로 진료한다.


우리나라의 약물난치성 우울증 환자는 100만명을 웃돈다. 3%에 불과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이들을 진료하기에도 모자란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과·소아청소년과·가정의학과·산부인과·외과 등 비(非)정신과 의사들이 안전한 SSRI를 처방하는 것을 제한, 우울증 치료를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해 1월부터 4대 신경계 질환에 동반된 우울증 환자에 한해 SSRI를 60일 이상 처방할 수 있게 기준이 변경됐지만 비정신과 의사들에 대한 SSRI 처방규제는 여전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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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500만~600만명에 이른다. 우울증은 자살 위험률을 20배 높힌다. 우울증은 우울감뿐만 아니라 두통·어지럼증·만성피로·식욕저하·불면증·요통·이명·소화불량·관절통·가슴답답함 등 다양한 신체증상을 유발하므로 내과·신경과·소아과·가정의학과 등을 찾는다. 암·뇌졸중·당뇨병과 콩팥·척추질환자 등의 자살위험률은 1.5~20배나 높다.

자살하는 사람의 60~70%는 그 전에 여러 신체·정신 증상으로 병·의원을 방문한다. 의사가 물어보기만 해도 20~30%는 자살 생각을 바꾼다. 적절한 조치를 한다면 대부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혈압·당뇨병약은 모든 의사가 처방할 수 있지만 SSRI 항우울제는 상황이 다르다. 보건복지부는 왜 안전하고 효과적인 SSRI 항우울제를 비정신과 의사들이 60일 이상 처방할 수 없게 만들었는가.

필자는 모든 외래환자에게 우울감과 자살 생각에 대해 물어본다. 이를 통해 1주일에 자살 고위험군을 1~2명씩 발견해 자살을 예방한다. OECD 1위 자살률을 낮추고 우울증 치료율을 높이려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SSRI 항우울제 60일 이상 처방 규제부터 빨리 풀어야 한다. 또한 모든 의사가 모든 환자에게 우울감과 자살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도록 교육해야 한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범의료자살예방연구회 회장·대한뇌전증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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