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과거 북미회담 실패사례는]클린턴 대통령, 2000년 방북 코앞서 무산

2012년 북미 2·29합의도

北 은하3호 발사로 파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지만 실제 성사까지는 난관이 많다. 지난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년 전후의 한반도 상황은 지금과 상당히 닮아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미국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윌리엄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1999년 5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뒤 대북제재 해제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를 맞바꾸는 합의를 도출해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까지 개최되면서 북미정상회담 추진도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2000년 12월 평양에서 열려 했던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은 결국 무산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사전 준비까지 마친 뒤였다.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한 상황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막바지까지 방북을 저울질했지만 공화당 등의 반대로 방북을 단념하고 중동 평화협상을 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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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무산된 북미 간 합의는 2012년 2·29 합의다. 당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글린 데이비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 영양지원을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두 달 뒤 북한이 장거리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면서 합의는 자연스레 파기됐다. 북한은 로켓 안에 인공위성 ‘광명성 3호’가 탑재돼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2·29 합의에는 위성 발사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북한은 “2·29 합의를 깬 것은 미국”이라며 이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이어나갔다.

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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