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기자의눈] 민간 금감원장 실험 계속돼야 한다

금융부 김기혁 기자





민간 출신 첫 금융감독원장이라는 초유의 실험이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최흥식 금감원장이 지난 12일 채용비리 연루 의혹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다. 본격적인 정책을 펴기도 어려운 6개월 만에 물러난 것이라 더 뼈가 아프다.


최 원장은 취임 당시 금융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모두 경험한 인사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1999∼2007년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과 원장으로 근무하며 금융 분야의 개혁이나 구조 개선에 관한 연구에 천착했다.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한국파생상품학회 회장 등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2003∼2005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2004∼2006년)으로 정책 수립 과정에서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금융연구센터 이사장을 거쳐 2012∼2014년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근무하며 금융 산업의 현장을 지휘했다.

최 원장은 하나금융 사장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을 후원하는 등 예술 활동에 관심을 보인 것을 계기로 2015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정명훈 예술감독과 갈등을 빚은 박현정 전 대표이사의 후임자인 그는 서울시향의 혼란과 내부 갈등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합리적인 성품도 강점이었다. 노조도 금융위원회를 견제할 인사로 주목했다.


관료 출신이 독식해온 금감원에서 민간 출신인 최 원장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가 변수였다. 취임 직후부터 채용비리로 무너진 조직의 재건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부원장 등 임원 전원을 물갈이하고 조직을 확 바꿨다. 외신을 직접 챙겨 읽을 정도로 업무파악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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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다. 시장을 잘 안다고 했지만 유리알처럼 만져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는지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꺼낸 후로는 ‘터프’해졌다. 금융 시장에 자신의 발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한 흔적이 적어 보였다. 아슬아슬했다. 지난해 말 “암호화폐는 버블이니 언젠가 꺼질 것이고 나랑 내기해도 좋다”는 이른바 ‘내기 발언’이 나왔다. 금융감독 수장의 발언으로는 너무 가벼웠다. 결국 비판 여론이 커졌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최흥식을 자르라’는 글이 올랐다. 이듬해 그는 국회에서 사과해야 했다. 청와대가 최 원장을 안 좋게 본 게 내기 발언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지주와의 ‘지배구조 전쟁’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투박한 관치라는 얘기가 쏟아졌다. 당국과 금융회사가 사생결단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런 와중에 최 원장의 채용비리 연루 의혹이 터져 나왔고 최 원장은 정면대결 의지를 밝혔다가 몇 시간 만에 사임을 발표해야 했다.

일부에서는 후임 금감원장을 놓고 ‘민간 출신이 실패했으니 관료가 맡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과연 그럴까. 관료였다가 민간 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던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다시 관료가 됐을 때 “민간에서의 경험이 (정책을 펴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민간의 경험 없이 정책을 펴는 게 반쪽짜리가 될 수 있었는데 그나마 민간의 경험으로 균형 잡힌 정책을 펴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 물망에 오르는 관료 출신들이 어떤 민간 경험을 했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민간의 실패로 관료 출신이 다음 금감원장이 돼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첫 민간 출신의 금감원장이 6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그래도 최 원장이 하고자 했던 개혁은 계속 진행돼야 해서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민간 출신이냐, 관료 출신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금융감독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을 갖고 감독기관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있는 인물이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후임 금감원장 하마평에 전혀 오르내리지 않고 있지만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과 같은 민간 출신도 찾아보면 많다.

coldmetal@sedaily.com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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