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파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과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사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교체 등판은 그간 워싱턴 정가에서 줄곧 예상됐던 시나리오다. 하지만 북미 대화의 입구가 막 열린 시점에서 인사 교체가 전격 단행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예상 밖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뜩이나 한국 외교부 패싱론이 불거진 상황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손발을 맞춰온 틸러슨 장관이 강판 됨에 따라 향후 북핵 해법 마련 과정에서 외교부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내정자는 진정한 북핵 해법은 김정은 정권 교체라고 주장할 정도로 대북 노선이 강경하다. 이 때문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파격 제안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 수용으로 북미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폼페이오 내정자가 길목에 서면서 대화를 통한 사전 밀당 협상의 여지는 좁아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대장으로 불리는 폼페이오 내정자는 이미 지난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북 협상에서 어떠한 양보도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한 외교 소식통은 “폼페이오는 대북협상이 실패할 경우 바로 군사 옵션을 실행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외교부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새해 들어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급격히 변해가는 과정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온 데 이어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미국 측 카운터파트까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당장 16일 틸러슨 장관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대신 존 설리번 국무장관 대행과 마주하게 됐다. 강 장관은 “급작스러운 변화”라면서도 ‘향후 한미 간 조율에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에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백악관, 트럼프의 복심인 폼페이오 내정자가 향후 북핵 문제를 주도할 경우 외교부 소외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무부의 입김이 세지면 외교부의 역할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는 역분석도 나온다.
한편 폼페이오 국장이 틸러슨 장관 후임으로 지명 된 배경을 놓고 대북 압박에 초점이 맞춰졌다기 보다는 미국의 중동 외교 전열 정비를 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 체류 중인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무 장관 교체 의중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가속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은 과하다”며 “이스라엘과 아랍 외교를 원하는 대로 치고 나가기 위한 목적이 더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틸러슨 장관은 졸업 직후 석유업계에 투신,엑슨 모빌 회장까지 역임했다. 틸러슨의 걸프 아랍네트워크와 중동 외교 시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