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개헌자문특별위원회의 개헌 자문안을 보고받고 대통령 발의 가능성을 거듭 내비치면서 개헌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문 대통령은 자문안 검토 과정을 거쳐 이르면 오는 21일 개헌안을 공식 발의하겠다며 국회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야권이 대통령 주도의 개헌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개헌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계 제로’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정치·헌법 분야의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는 “대통령이 야당 반대에도 개헌안 발의를 강행할 경우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여야 합의를 통한 국회 차원의 개헌안 마련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외 산적한 현안들을 고려할 때 6월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가 불발되면 사실상 연내 개헌은 힘들 것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했다. 다만 여야가 뒤늦게라도 개헌 내용에 대해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경우 지방선거와 시기를 분리한 개헌 투표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됐다.
먼저 지난 13일 공개된 국민개헌자문특위의 개헌 자문안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다 갖는 승자독식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이번 자문안에는 대통령의 권한 일부를 국무총리와 나누는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권한 가운데 일부를 총리에게 이양함으로써 실질적인 책임총리제를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정부 재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측면에서 예산 법률주의를 도입하고 대통령 사면권 제한과 조약 비준 동의권 확대 등을 통해 대통령 권한 일부를 축소하고 국회의 기능을 강화한 점은 눈에 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제민주화 의미를 명확히 하고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점에 대해서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장영수 교수는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정치논리와 같이 경제질서를 형성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김문현 이화여대 명예교수 역시 “취지 자체는 공감되지만 헌법에 상세한 경제조항을 담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강행할 경우 국회 통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개헌 저지선(국회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인 116석을 확보한 만큼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더라도 야당이 반대하면 부결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은 “한국당뿐 아니라 모든 야당이 대통령 주도의 개헌에 반대하고 있어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며 “물론 법률상 대통령 발의도 가능하지만 야권의 대대적인 반발을 감안하면 비효율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정부 개헌안 카드를 접지 않고 있는 이유를 놓고선 대국민 공약 이행 의지의 표명이라는 분석과 함께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임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여야를 떠나 모든 후보가 약속한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를 꼭 지키겠다는 의지의 차원”이라며 “국회가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안을 발의하도록 종용하는 압박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취임 초부터 계속 강조해온 개헌 약속을 야당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접을 경우 향후 여러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를 분리 실시하자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었다. 김용철 교수는 “선거가 끝나면 개각이나 정계 개편, 북핵 문제 등 국내외적으로 대형 이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사실상 연내 개헌 가능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임 교수도 “여야가 지금이라도 마지노선인 오는 4월28일 전까지 개헌안을 도출해 6월 개헌 투표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문현 교수는 “지방선거까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여야가 우선 내용을 합의한 뒤 국민투표 시기만 조절해 실시하는 방안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현상·류호·박우인기자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