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금융위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정권 바뀌었다고...3년만에 기준 뒤엎나"

각종 임추위서 CEO 배제

사외이사 권한 비대해져

금융권 "코드인사 등 관치 우려"

대기업 후계구도에도 변수로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이 현행 최다출자자 1인에서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주주로 대폭 확대된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 지분 0.06%를 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2년마다 대주주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심사받게 된다.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삼성·롯데 등 대기업집단의 후계구도에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는 15일 이 같은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내놓고 관련법 개정에 착수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보험이나 증권·카드사 등을 보유한 대기업 총수 일가는 모두 적격성 심사를 받게 된다. 기존에는 최다출자자 1인에 대해서만 심사를 했는데 앞으로는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와 특수관계인까지 심사범위가 넓어진다. 롯데손해보험 지분 1.35%를 가진 신동빈 롯데 회장도 적격성 심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적격성 심사요건에는 기존 금융관련법·조세범처벌법·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더해 배임·횡령 등의 죄를 다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추가하기로 했다. 배임 등 범죄로 금고형 이상을 받은 대주주는 의결권이 제한돼 10% 이상 보유지분을 강제 처분해야 한다. 다만 의결권 제한은 법 시행 이후 범죄행위에만 적용된다.


금융회사들은 지배구조 개선안에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4년 만들었던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몇 년 만에 또 다시 기준이 확 달라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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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개선안을 밝힌 것은 지난 2014년 말이다. KB금융이 전산시스템 기종 선정을 놓고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충돌했고, 이 과정에 이사회 의장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회장과 은행장이 서로 줄을 서려고 하면서 논란이 됐었다. 이사회의 힘이 막강해 지자 당시 금융당국은 대안으로 CEO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3년만에 다시 금융당국이 개선안을 밝히면서 정반대가 됐다. 임추위에 CEO들이 배제됐고, 임추위는 사외이사들이 3분의2 이상 포함되도록 구성해야 한다. 금융지주 회장의 힘을 다시 확 빼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CEO들이 사외이사를 뽑고 이 사외이사들이 다시 CEO를 선출하는 일명 ‘셀프 연임’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지만, 이번 조치를 통해 다시 사외이사들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관치(官治)가 더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CEO가 참여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와서 이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이 정반대 논리로 다시 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계열사 경영진도 회장보다는 이사회 의장에 줄을 서면서 경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극단적인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미 주요 금융지주 이사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을 잇달아 추천되면서 ‘코드 사외이사’ 논란이 나오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또 사외이사의 연임시 외부평가를 의무화하고, CEO의 금융전문성, 공정성, 도덕성, 직무전념성 등 모호한 자격요건을 법률로 의무화하도록 했다. 그러나 외부기관이 사외이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대한 금융권의 우려도 크고, 모호한 CEO 자격기준을 법률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있느냐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회사 내에서 CEO 권한이 작아지고 코드 맞춤형 사외이사들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기업들이 수익 대신 정권 눈치 보기에 열중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에서 주주는 오히려 소외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지배구조법 개정안으로 삼성이나 롯데 등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경영에도 상당한 파장이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삼성그룹 후계 구도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의 핵심 금융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경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지분이 20.76%로 그 동안에는 이 회장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았다. 그동안에는 최대 출자자 1인만 심사를 받으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통과돼 예정대로 내년 7월부터 시행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만약 심사 결과 결격 사유가 발생하면 지분 10%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이 제한되고 경우에 따라 강제처분 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적격성 심사 대상이 되는 대주주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금융회사의 정상적인 경영이나 인수합병(M&A) 등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액연봉자의 보수 공시도 강화된다. 보수총액 5억원 또는 성과보수 2억원 이상인 임직원은 개별 보수를 공시해야 한다. 또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 금융회사들은 임원 보수 계획을 주총에 의무적으로 올려 찬반 투표를 거치도록 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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