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빨리 사회로 나오면 됩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모두 ‘파이팅’하면 좋겠습니다.”
한국 최초의 동계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38·창성건설)이 금메달 새 역사를 쓴 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남긴 말이다. 이는 곧 2018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36명의 한국 선수들이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열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Passion Moves Us)’를 주제로 출발했던 평창패럴림픽이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게 한다(We Move the World)’는 메시지를 남기고 열흘간의 열전을 18일 마무리했다.
이날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진행된 폐막식에서 한 무용수가 들고 있던 흰 천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동안 평창과 세계를 밝혔던 성화의 불씨가 천천히 사그라졌다. 앞서 장애인 인권에 헌신하고 지금은 치매와 싸우고 있는 황연대 여사는 패럴림픽 최우수선수(MVP) 격인 ‘황연대 성취상’ 역대 수상자 5명으로부터 뜻깊은 감사패를 받았다. 성화가 꺼지자 장애인(배희관 밴드)-비장애인(가수 에일리)이 함께 ‘공존의 세상’을 노래했다.
6개 전 종목 36명의 선수로 꾸려진 팀 코리아는 장애를 넘어 혼신을 다해 눈과 얼음을 누비며 절절한 감동을 선사했다. 성적도 금 1개, 동메달 2개로 역대 최고였다. 49개국 중 공동 16위로 마무리한 우리나라는 금 1, 은 1, 동메달 2개로 종합 10위에 오르겠다는 목표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동계패럴림픽 참가 이래 26년 만에 처음 금메달이 터지는 등 값진 수확을 봤다.
신의현은 이번 대회 7개 세부종목에 출전해 무려 63.93㎞를 달렸다. 메달 전략종목에 집중하기 위한 체력 안배나 페이스 조절 같은 것은 없었다. 매 종목 투혼의 질주를 펼쳤고 지난 11일 크로스컨트리 스키 15㎞ 동메달에 이어 지난 17일 개인전 마지막 출전종목인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7.5㎞ 좌식경기에서 22분28초40으로 기어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대회 전까지 한국의 메달은 은메달 2개가 전부였다. 노르딕 스키에 입문한 지 3년도 안 된 신의현의 금메달은 기적으로 통한다. 신의현은 18일 또 다른 도전을 깜짝 선언했다. “앞으로 핸드 사이클을 열심히 타서 2년 뒤 도쿄하계패럴림픽에 도전해보려고 한다”는 것. 국제대회 경험도 있다고 한다.
신의현은 대학 졸업을 앞둔 2006년 2월에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에 한때 식음을 전폐하는 등 3년간 피폐한 삶을 살았다.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다리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어머니의 끈질긴 설득이었다. 신의현은 휠체어 농구, 장애인 아이스하키, 휠체어 사이클 등을 배우며 희망을 찾았다. 12년 전 자신을 왜 살려냈느냐고 울부짖던 청년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는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신의현은 “사고 당시에는 이런 인생을 살지 몰랐다. 실의에 잠긴 많은 장애인분이 내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화를 등에 메고 경사면을 올라 개막식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던 한민수(48·강원도청)는 은퇴 무대에서 동료들과 동메달을 합작했다. 주장 한민수가 이끄는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7일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3피리어드 11분42초에 터진 장동신의 결승골로 1대0으로 이겼다. 세 번째 출전 만에 따낸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사상 첫 메달이다. 한민수는 두 살 때 침을 잘못 맞아 생긴 관절염이 악화해 서른 살에 왼쪽 다리를 절단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산증인이기도 한 그는 “장애인 선수 출신으로 첫 지도자가 돼서 후배들에게 기술을 물려주고 싶다. 이제 금메달 따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휠체어 컬링 대표팀은 평창올림픽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팀 킴’처럼 매 경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정승원(60)·방민자(56) 등 평균나이 50.8세의 대표팀은 예선 1위로 4강에 오르는 등 끈끈한 조직력과 노련미로 색다른 감동을 안겼다. 3·4위전에서 캐나다에 3대5로 패한 대표팀은 아쉬움에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 내내 생전 처음 경험하는 구름 관중의 응원에 새 힘을 얻은 이들은 훌훌 털고 또 다른 출발을 준비할 계획이다.
평창패럴림픽은 역대 동계패럴림픽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입장권 판매는 목표량인 22만장 대비 152%인 33만5,000장을 기록해 2010년 밴쿠버 대회(21만장)와 2014 소치 대회(20만장)를 훌쩍 뛰어넘었다. 입장권 수입도 66억6,000만원으로 역대 최대다. 대회 기간에 4개 경기장과 평창 올림픽플라자, 강릉 올림픽파크를 총 32만여명이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