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밀월 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돈독해지고 있다. 중동 내 패권 강화를 위해 미국이 필요한 사우디는 미국산 무기 구매와 원자력사업 발주 등을 빌미로 미국의 환심을 사고 있고 미국 역시 사우디에 각종 당근을 제시하며 이란 압박을 위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백악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가 구매한 미국산 무기의 종류를 보여주는 차트를 가리키며 “사우디의 무기 수입으로 미국에 생겨난 신규 일자리가 4만여개에 이른다”고 왕세자를 치켜세웠다. 빈 살만 왕세자의 미국 방문은 차기 왕위계승 확정 이후 처음이다. 두 정상은 지난해 2월 미국산 무기 구입 등의 명목으로 사우디가 미국에 2,000억달러(약 214조 원)를 투자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방장관을 겸하고 있는 빈 살만 왕세자에게 무기 구입을 지속해달라고 당부했으며 왕세자는 “사우디가 약속한 투자가 모두 이행되면 그 규모가 4,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화답했다.
사우디와 미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했던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와 찰떡 공조를 이루는 것은 중동에서 이란의 세력확장을 저지해야 한다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이란과의 핵협상을 성공시켰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오는 5월12일을 데드라인으로 정해놓고 재협상을 압박하고 있다. 예멘 내전에서 이란과 사실상 전쟁 중인 사우디는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의 이슬람 시아파 반군 후티를 격퇴하기 위해 전투기 폭격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미국 상원은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부결시키며 사우디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사우디는 “핵폭탄 보유를 원치 않지만 이란이 핵폭탄을 개발한다면 최대한 신속히 같은 패를 낼 것”이라고 핵무기 개발도 불사할 수 있음을 내비치는 한편 미국 기업의 사우디 원자로 사업 수주 대가로 ‘미 원자력법 123조’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조항은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사용하는 나라가 군사 용도로 핵을 활용할 수 없도록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제한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사우디가 미국에 원자로 사업 수주권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우라늄 농축 권한을 가져오려는 야욕을 내비친 것이다. CNBC는 “사우디와 이란의 경쟁은 중동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라며 “결국 양국의 핵무기 도입이라는 재앙을 낳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