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4월이 슬펐는지 하늘도 비를 뿌렸다. 제주에 내린 첫날 찾은 곳은 백조일손묘(百祖一孫墓). 시기적으로는 4·3이 잊힐 무렵인 6·25 이후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보도연맹과 관련된 참사지만 결국 4·3의 연장선 상에 있다. 해방 전후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을 계도한다는 명목으로 보도연맹에 가입시킨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을 모두 학살한 사건이다. 지서에 명령을 내려 조사를 받은 적이 있거나 노동운동을 한 적이 있는 지식인은 경찰서별로 잡아들이라고 한 후 처형했다.
백조일손묘역은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보도연맹 관련 132명의 유해를 안장한 곳이다. 처형 후 유족들이 시신도 찾아가지 못하게 하다가 5년 만에 수습을 허락한 후 1956년 5월18일 조성됐다. 백조일손묘의 의미는 5년 후에 시신을 거두러 가보니 시신의 구별이 어려워 100여개의 칠성판에 시신을 수습해 한곳에 장사를 지낸 데서 유래한다. 조상은 100여명이지만 자손들은 한 형제들처럼 지내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제주 4·3평화공원은 4·3이라는 비극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며 제주도를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조성됐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중 조성이 결정됐고 이명박 대통령 재임 중 운영을 시작했다. 4·3평화기념관을 비롯해 위령제단·위령탑·유해봉인관과 조형물 등이 있다. 기념관 안에는 관련 콘텐츠들이 풍부하고 잘 보존돼 있다. 제주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가볼 만한 곳이다. 제주시 명림로 430.
성산 일출봉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들러볼 4·3 유적지로는 성산읍 4·3위령공원이 있다. 일명 터진목이라고도 불리는 위령공원은 성산국민학교에 주둔하던 서북청년단 특별중대에 끌려온 성산면과 구좌면 관내 주민들이 고문 끝에 총살당한 학살터다. 일출봉 남쪽 1㎞ 지점에 있는데 내비게이션에 등록돼 있지 않지만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이곳에는 ‘1948년 9월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비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성산리 일출로.
너븐숭이는 4·3 피해지역 중 리(里) 단위로는 가장 희생이 컸던 곳이다. 1949년 1월17일 무장한 빨치산들이 매복해 있다가 트럭을 습격, 군인 2명이 죽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 후 바로 옆 함덕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보복에 나서 북촌을 초토화하고 학교운동장으로 주민들을 집합시킨 후 20명 단위로 차례로 죽여 마을주민 1,200명 중 모두 350명이 희생된 곳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은 북촌 사건을 소재로 쓴 이야기다.
한편 제주관광공사는 4·3 70주년을 맞아 홈페이지(http://www.visitjeju.net) 제주알아가기>제주이야기>제주의 역사 코너에 유적지 및 관련 콘텐츠를 모아 놓고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유적지를 가보려는 관광객이라면 미리 검색해 살펴볼 만하다. /글(제주)=우현석객원기자 사진제공=제주관광공사